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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동화>그림자돌멩이 1
2008-03-03 10:37:15
sionsira

조회:2408
추천:214

< 그림자 돌멩이 >

 

최 윤 애

 

오늘도 늦잠을 잤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늦잠자서 늦은 게 다 엄마 탓인 냥 투덜거렸다.

“엄마, 엄마. 나 늦었어. 빨리빨리! 내 수저통, 물통, 내 실내화가방은 어디 있어? 아, 참. 내 알림장은? 오늘 준비물이 뭐였더라?!”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고양이 세수로 겨우 눈곱만 떼어낸 나는 괜히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엄마에게 짜증을 부렸다.

“그런 건 미리미리 챙겼어야지. 엄마보고 어디 있냐고 물으면 어떻게 하니? 엄마한테 맡겨놓은 것도 아니면서.”

“몰라, 몰라. 지각하면 나 혼난단 말이야.”

“국 식겠다. 얼른 밥 먹어.”

“밥 먹을 시간 없어.”

“그러게 엄마가 깨울 때 일어나야지. 오 분만, 십 분만이 벌써 삼십분이나 지났잖니.”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듯 한바탕하고 학교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뭔가에 짓눌린 듯 무겁고 찝찝하다. 중요한 걸 까먹고 가는 기분이 들어서 더욱 짜증이 났다.

아침에 엄마와 아닥치듯 싸우고 나오는 날이면 수업시간에 선생님말씀도 제대로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꺼풀 위에는 육중한 역기 두 개를 올려놓은 듯 자꾸만 아래로 내려앉고, 간밤에 하던 컴퓨터게임만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내 정수리를 출석부가 강타하는 순간 눈앞의 컴퓨터가 푹하고 꺼져버렸다.

“제하! 간밤에 뭘 했기에 수업시간에 조는 거야!”

나는 입가에 묻은 침을 소맷자락으로 쓱 닦고 머리를 북북 긁어대었다.

감은 지 한참 된 머리에서 역한 냄새가 손가락에 묻어났다.

“한심한 녀석! 그래 갖고 커서 뭐가 될래? 그딴 식으로 살다간 노숙자가 되고 말거다. 명심해라.”

출석부로 정수리를 얻어맞는 것은 이미 이골이 나서 감각도 없었지만 선생님의 날카로운 말 한마디가 내 심장에 아프게 꽂혔다.

아이들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정신이 반짝 났다.

그런 식으로 살다간 노숙자가 되고 말거다. 노숙자가 되고 말거다, 노숙자가 되고 말거다, 노숙자가 ………….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순간 천둥번개처럼 내 심장에서 메아리쳤다.

‘노숙자라고?’

나는 얼마 전 엄마와 함께 서울역에 갔을 때 나무의자 위에서 모로 누워 자고 있는 냄새나고 추레한 사람들을 보았었다.

일하기 싫어서 게으름을 피우다가 노숙자가 된 사람들이라고 엄마가 말했다.

일만의 동정의 가치도 없다는 듯 엄마는 냉정하게 그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지적했다.

사회악이라고까지 말했다.

제대로 씻지 않은 몸으로 누웠던 벤치에 또 누군가가 모르고 앉았다가는 금세 병이 옮고 말거라면서 복지부는 뭐하는지 저들을 강제수용이라도 해야지, 저렇게 방치하면 되겠냐고도 했다.

서울역 앞은 악취로 진동했다.

그 냄새의 주요원인이 노숙자들의 불결한 생활 습관 때문이라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의 일장연설을 들으며 지나칠 때 나는 실제로 그런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덕지덕지 때 묻은 옷에 머리는 몇 달은 안 감았는지 파리가 제집인 냥 무시로 앉아 노는 한 노숙자가 사로잠을 자다가 바지지퍼만을 열고 오줌을 누는 거였다.

오줌은 그대로 나무의자 아래로 줄줄 흘러내렸고, 심한 악취에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강동강동 지나쳐갔다.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때 엄마가 들려주던 이야기와 광경은 가히 내게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께서 내게 던진 말 한마디는 그때의 충격보다 더 큰 것이었다.

그딴 식으로 살다간 노숙자가 되고 말거라니 …….

나는 철모를 머리에 쓰고, 쇳덩어리로 만든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걷는 기분으로 하교를 했다.

‘그딴 식으로 살다니? 내 생활태도가 어떻다고 그런 심한 말을 한 거지?’

나는 화가 나서 길가에 돌멩이를 발로 뻥 걷어찼다.

“아야, 왜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 건데?”

나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사방팔방 다 둘러보았다.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않았다.

“누구야?”

나는 누군가가 숨어서 말을 하는 줄 알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아무도 없었다.

나는 또 다시 돌멩이를 걷어찼다.

“아야!”

나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나뒹굴던 돌멩이가 말을 하는 거였다.

“방금 네가 말한 거니?”

“그래. 아파 죽겠단 말이야. 빨리 내 머리에 호 해줘.”

나는 어안이 벙벙한 낯빛으로 방금 걷어찼던 돌멩이를 주워서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그냥 평범하게 생긴 돌멩이일 뿐이었다.

“세상에. 돌멩이가 말을 하다니! 어떻게 된 거지?”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을 뿐인데 그 말을 알아들은 돌멩이가 조잘거렸다.

“네 눈에는 내가 그냥 평범한 돌멩이일지 모르지만 나도 옛날에는 멋진 왕자님이었어.”

“왕자님?”

나는 어의가 없다는 듯 해찰을 부리며 말했다.

“그래. 내 얘기가 궁금하면 나를 데리고 가서 깨끗한 물로 씻겨봐.”

갈수록 태산이었다.

돌멩이는 아예 명령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이게 말이 돼? 돌멩이가 말을 한다는 게 말이야.”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한다는 거 몰라? 너도 말도 안 되게 살고 있잖아!”

“뭐? 돌멩이 따위가 뭘 안다고 그래?”

나는 자존심을 건드는 돌멩이를 휙 집어던질 자세를 취하며 화를 냈다.

“그렇게 불뚝불뚝 화부터 내면 발전이 없어. 자숙할 줄도 알고, 자신을 되돌아볼 줄도 알아야 발전하는 거라고.”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것을 겨우 짓누르며 돌멩이를 째려보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틀린 구석이 없어서였다.

‘돌멩이가 말을 했다면 아무도 안 믿고 나를 도리어 정신병자로 볼 텐데. 어떻게 하지?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갈까?’

“그러면 넌 후회하게 될 거야. 날 만난 건 너에게 행운일 텐데. 굴러들어온 행운을 차버리는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토끼꼬리만한 돌멩이는 내 속마음까지 읽고 또박또박 말대꾸를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돌멩이를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 아빠는 장사를 하기 때문에 집에는 늘 나 혼자였다.

나는 현관에 신발을 휙 벗어던지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주머니 속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한발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내 몸을 뭔가가 아래에서 잡아당겼다.

“어? 이상하다. 발이 왜 안 움직이지?”

“뒤돌아서 현관을 봐. 네가 방금 벗어던진 신발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똑똑히 보란 말이야.”

주머니 속의 돌멩이가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르면서 명령했다.

이것도 돌멩이가 한 짓이라니 나는 진짜 황당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나는 못이기는 척하고 뒤돌아보았다.

현관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신발은 한 짝은 뒤집어져 있고, 한 짝은 엄마의 슬리퍼 위로 나자빠져 볼썽사납게 보였다.

“신발을 가지런하게 놓아야지.”

“알았다, 알았어.”

내가 알았다고 대꾸를 하자 그제야 발이 떨어졌다.

나는 현관에 나자빠져있는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엄마 아빠의 슬리퍼도 짝 맞추어 정리를 해놓았다.

나는 투덜거리며 내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그런데 전기가 나간 것도 아니고, 컴퓨터가 고장이 난 것도 아닌데 먹통이 되어 있었다.

“우씨! 어떻게 된 거야? 왜 컴퓨터가 안 켜지는 거야?!”

나는 컴퓨터 본체를 발로 꽝꽝 걷어차며 분풀이를 했다.

“밖에서 돌아오면 씻기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아까 약속했지? 내 몸도 씻어주기로 했잖아.”

또 돌멩이 짓이었다.

나는 화가 솟구치는 것을 겨우 억누르며 욕실로 향했다.

바지와 윗도리를 벗고 욕실로 들어가 약속한 대로 돌멩이를 깨끗이 씻어주고, 나 역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양치도 했다.

기분이 상쾌했다.

“씻기 전에는 귀찮더니 씻고 나니 확실히 기분이 상쾌해.”

나는 전신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돌멩이를 깨끗이 씻고 보니 무릎깍지를 끼고 얌전히 앉아 있는 소년 같은 형상이었다.

나는 후다닥 내 방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틀자 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칠 것 같았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만큼 신경질 나는 것도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돌멩이를 향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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