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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눈 연구
2014-03-02 20:33:42
hananim

■ 이영지(Lee Yeong Ji) 시인(poet)
△경북 영주 출생
△서울문리사범대 국어과, 명지대 대학원 국문과(문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철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 학술원 강의, 명지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주임교수 역임
△《시조문학》에서 시조, 《창조문학》에서 詩 등단
△《창조문학》편집부국장.《말씀과 문학》편집국장. 한국창조문학가협회 사무국장.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영예문학교회 담임목사(자비량교회운영)
△한국창조문학대상,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시집『하오의 벨소리』,『행복의 순위』,『행복 행 내 님 네』외 다수
△이론서『한국시조문학론』,『이상 시(李箱詩) 연구』,『시조창작 리듬 론』외 다수
조회:2015
추천:132
첨부파일 :  1393760022-47.hwp
 
 
바라보는 눈
 
 
이 영 지
(문학박사출학박사 시인 시조시인)
 
사람에게 있어서 상대방을 바라볼 때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눈을 보면 상대방의 마음이 보이지요. 눈이 거울이므로, 마음의 거울은 그 눈빛이 비치기에 알아보고 그것을 시로 쓰지요. 선한 마음의 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눈은 거짓말을 할 줄 몰라요. 세상을 치유해갈 수 있는 마음의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희고 그리고 그 마음은 하늘로 상달되어 하늘에서 그 뜻을 이루어 주지요. 대체로 눈빛만 보아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건 눈빛 속에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상대방을 이해하고 아름답게 보려는 마음의 눈은 하늘에서 내려받은 마음의 눈이지요.
좋은 마음의 눈은 하늘에서 내려오지요. 그러기에 시인에게는 의태어로 시를 쓰게 됩니다. 더구나 시조의 정제된 리듬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건 눈이 가지는 다양한 의태어에 따른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눈에 대한 언어표시는 히브리어로 쌍수 아인입니다. 눈은 쌍수입니다. 눈 두 개로 보여지는 정확도의 균형은 현실 넘어서의 또 다른 세계를 보는 내면의 의미도 가능하게 합니다.
 
1. 눈의 특성
눈의 생물학적 특징은 홍체와 동공을 제외하고 눈 전체를 감싸는 흰색 부분 각막이 눈으로 들어오는 빛을 굴절시켜 수정체로 보냅니다. 수정체는 각막과 함께 빛을 모으는 굴절기관으로 수정체를 둘러싼 모양근의 수축과 이완으로 수정체 두께가 조절되어 가깝거나 먼 거리에 초점을 맞춥니다.
각막으로 들어온 빛이 굴절되어 굴철제와 간상제와 추상체가 있는 망막에 상이 거꾸로 비치게 되면 눈 뒤쪽에 시신경 신경섬유다발을 통해 뇌로 전달하고 섬유 다발중 간상체가 추상체가 없어 상이 보이지 않는 부분을 맹점과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정보가 전달되며 정보를 파악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의 눈은 양안시로 양쪽 눈에 매치는 상을 하나로 합쳐 거리를 가늠해 몸을 돌리지 않고서 보이는 거리를 보게 합니다.
 
2. 눈 멈과 눈 뜸
성경은 봄의 문제, 곧 눈과 관련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14:9 )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9:1-3)
보내심을 받은 자(9:7)를 바라보는 눈(9:26)은 히브리어로 아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백성 민족 열방 만민 국민 만국 열국을 암밈 으로 합니다. 이들 모두 소경이미지입니다. 훈민정음에 어리석은 백성이라고 기록됨과 성경이 말하는 다수인원을 소경으로 보는 것이 일치합니다. 유명한 사울이야기는 사울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결박하여 죽이려 하자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가서 사흘 동안이나 지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서 다시 눈이 떠집니다.
3. 물과 눈
성경은 또 희안하게 눈 과 우물표기를 아인으로 같이 합니다. 노아 홍수때 큰 물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늘우물이 눈으로 표시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시선 우물곁에,우물에,우물가 모두 눈으로 표시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시선 우물곁우물에우물가 모두 우물과 눈이 동일시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절대 순종할 때에 아들 이삭(웃음)이 주어지자 브엘세바 우물(well)은 눈으로 바뀝니다. 아브라함이 절대 순종할 때의 이삭웃음이 주어지고 이 웃음을 늘 웃는 웃음으로 바꾸어 주시려 보는 눈을 달아 줍니다.
세상을 사는 방법은 웃으며 사느냐 울며 사느냐입니다. 정답은 물론 웃으며 삽니다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로 우물곁 그 약대 곁에설 이삭의 아내 얻기도 아브라함의 종과 라반이 만나는 장면이 그 우물과 우물가 또한 눈 마주치기입니다.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우물의 물을 얻으려고 그 우물가에 설 때 샘은 눈이 됩니다. 이삭은 그 후 아브라함이 값을 주고 지불한 아브라함의 그 우물을 다시 파게 됩니다.
눈과 관련한 일은 아시리미래형 존칭어에 있습니다. 아시리는 하나님 눈에 넣어 보호해주하십니다의 뜻입니다. 이십을 의미하는 이 아시리는 하나님이 아시는 눈입니다. 곧 모두 소경이미지인 국가와 민족과 국민 이 모두에 소경들의 답답함을 아시기에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사랑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눈을 뜨게 하여 주시려 합니다.
성경에는 눈과 관련한 언어 구원자자가 있는데 희망을 버리지앟고 어려움을 참고 눈을 하늘로 들어 쳐다보면 하나님이 구원해주시는 의미를 이 눈 언어에 두고, 그리고 물, 곧 말씀과 동일시합니다. 민족이라는 언어 암밈에서 눈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 백성 만들기를 명령받은 야곱은 양들이 얼룩얼룩한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새끼를 배고 얼룩얼룩한 양을 낳게 합니다. 이 바라보는 그대로 되는 일은 일상에 무엇을 바라보느냐를 알려주는 일입니다.
물에 마음을 비추이면 물은 아름답게 그 모양을 형상화하듯이 인간의 마음도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대로 되는 눈의 주요성은 백성, 국민 모두 눈이 들어 있는 암밈을 쓰는 이유를 예시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영을 불어넣어 영이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마음에 비추어 눈으로 나타나는 이 눈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비법으로 눈에 눈물이 가득고이게 합니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백성 암밈 곧 보답하는 백성이 될 때 그들의 눈물, 물 가운데 하나님은 계십니다.
1) 희명(희명)의 아이
삼국유사에서는 경주 한기리의 여인 희명의 아들이 생후 다섯 해 만에 갑자기 눈이 멀게 되자 분황사 좌전(左殿)에 있는 천수대비의 벽화 앞에서 아이로 하여금 이 노래를 부르게 하여 마침내 밝음을 얻었습니다. 십구체(十句體) 향가 희명(希明)의 기록입니다. 희명이 분황사 좌전(左殿)에 있는 천수대비의 벽화 앞에서 아이로 하여금 이 노래를 부르게 하여 마침내 밝음을 얻었다는 10구절로 나누어지므로 십구체(十句體) 향가인 향찰은 천수천안(千手千眼 : 천 개의 손과 그 손바닥마다 박혀 있는 천 개의 눈)을 가진 천수관음 앞에 "두 눈이 없는 나에게 눈을 주실 것을 애원합니다. 종교적 신심(信心)으로써 신격(神格)에 자신이 구제를 노래하는 서정시는 일연 찬시입니다.
이처럼 다시 눈을 뜨는 성경바울 이야기와 더불어 국민 소경 민족 만민 백성 모두를 소경 이미지로 하는 일도 또한 눈의 중요성을 제시하는 일입니다. 이들 전체 대표 한 사람도 소경의미입니다. 따라서 사람이란 존재는 눈이 먼 존재라는 일괄성을 제시하는데 성경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함의 강조라 말하였습니다.
-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합니다 할 것이니라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서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화 있을진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요 그 일을 어두운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29:9-15)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29:10)며 너희의 눈을
성경은 눈 떠지는 일을 구원 예수로 잇습니다. 여성 수동태분사로서 명사형일 경우 자유와 구원. 동사로는 열려 있습니다 · 넓다 · 완전합니다'입니다. 발음 예수아예수존재구원자로 찾아지는 구원 예수아 언어들은 한결같이 진행형입됩니다. 더구나 예수의 첫 글자 하나님의 오른 손 י(요드)를 빼버린 양 세에서 하나님의 오른 손 י(요드)가 첫 글자에서와 같이 예수님의 몸이 부서지도록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인도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솨 예수 예솨 예수아 예솨아 모두에 들어 있는 치아 ש(/연단)의미로 음식을 잘게 씹어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에 예수님은 그의 십자가와 그의 백성들이 그의 말씀을 잘 듣고 잘게 씹어 먹히시었습니다. 치아 ()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그의 몸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버리는 표백된 하쉬쉬입니다. י(요드)가 글자 앞에 놓이어 이 뜻을 전합니다. ‘야훼라는 말도 있는데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하셨으며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시었습니다.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와 행하시기를과 우리의 생각 밖에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로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일을 눈으로 바라만 보라는 것입니다. 이 때 눈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우리의 구원을 보는 일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은 구원구원구원이시고 나의 구원이어서 그 나의 구원자가 구원 구원 구원하시면서 승리가 나에게로 온 구원입니다. 계속하여 구원의 역사는 구원의 구원까지 예수아나야솨아그리고 예솨예쉬를 통해 여호수아이름과 같이 하나님의 손 י (요드)으로 언어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들 역사 속에서 지금도 역사함을 의미합니다. 한국말에는 요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요셉또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지금도 구원하고 있습니다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아담과 노아의 사이는 10대입니다. 노아 당시는 구약의 시대임으로 죄로 인한 저주가 있는 시기이나 이 죄의 때에 은혜의 보답하는 종 노아는 여호와의 눈 안에 있는 은혜를 발견함으로써 배를 만드는 은혜를 입습니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 삽니다. 그것은 눈으로 보이는 은혜갚기입니다. 120년 동안 노아는 하늘만 바라보며 우물 깊이를 만들었습니다. 노아는 여호와의 선히 여기심으로 하나님의 눈 안에듦과 동시에 그대의 눈에 들어 모든 깊음의 샘들이 솟게 하는 기적을 만듭니다. 마음의 눈이 열리면 샘이 솟습니다. 더구나 심연의 샘이 솟고 하늘의 거대한 창이 열려 나온 물(7: 11) 위에 배가 뜨는 일은 눈이 떠지는 일입니다.
2). 눈뜨는 일은 은혜를 받은 자
눈으로 보는 일은 샘과 관련됩니다. 샘의 깊이만큼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눈의 깊이가 있는 곳은 배 안(U)에서, 그리고 그 깊은 바다 속은 하나님 깊음의 샘에서 건져집니다. 부르톤(Charless Burton)은 노아 홍수로 인한 인류 전멸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의 물로 살렸다 하였습니다. 람스(Bernard Ramms)는 노아 홍수 전 이미 사람의 분포설을 주장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 피 이어지기는 눈으로 간절히 바라는 삶의 연장선입니다.
 
3). 눈이 뜨여지면 사람은 움직입니다
 
눈이 떠지면 방향을 알게 됩니다. 방향따라 그리로솨마는 등불 들고 가게 됩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거울 삼아 이스라엘 땅을 기업으로 받아 백성들이 십일조와 그들의 손의 거제와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내야 하는 일을 거울 삼아 산 날들입니다. 곧 순종할 때의 나날들(5: 33)이 됩니다. 말씀으로 사는 날들(33: 14)입니다. 장구의 날들로서 하나님의 여호수아가 모든 왕과 싸운 여러 날들(11: 18)입니다. 다윋에게 한 등불이 항상 있게 되는 날들이며 야훼의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영원히 지켜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않을 때에만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이 있는 날들입니다.
그러므로 한나님 말씀을 거울삼아 사는 날은 늘 하나님을 보는 날이므로 늘 일어나를 꿈을 들고 사는 날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쿰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7: 10)
 
3. 눈과 물고기
눈과 물고기는 같은 뜻입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서 여호수아 아버지 눈은 물고기 뜻을 지닙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대상 7: 27)는 예수 그리스도는 ÏΧθΥΣΪησού(예수) χριστού(크리스토) θεός(에오스) ϒυίός(위오스) Σ와 이어집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의 머리글자가 모이어 물고기 의미를 지닙니다. 물고리 의미는 히브리어 눈 נ ן(,) 글자입니다. 예수님 믿는 표시를 물고기로 하며 물고기 그 자체가 예수님을 의미하게 됩니다.
인간 물고기를 낚는 청년 예수는 하나님 사랑의 실천을 한 후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는 일은 한국의 수로왕능에서 발견됩니다. 벤허영화는 갈증을 심히 겪는 벤허에게 얼굴이 알려지지 않는 그가 물을 건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4: 14, 15)에게도 예수님은 물과 말씀을 연결시킵니다. 사막을 통과할 때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해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었습니다. 물과 눈과 물고기는 같은 뜻을 지니면서 말씀을듣고 보고 믿는 경지까지 이어집니다.
반석에서 물이 솟는 일(48: 21)도 다 눈으로 보는 일입니다. 샘의 근원(49: 10)에서 솟아나는 물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목마르지 않게(7: 16) 하시는 물입니다. 이 물을 보며 먹게 됩니다. 이 실천은 모두 눈으로 보여지는 일입니다. 삶을 기적으로 체험하며 사는 일은 모두 직접 눈으로 보는 일입니다.
눈으로 보며 느끼며 이 거치른 세상에서 마음의 행복을 느끼는 일은 하나님 백성에게서만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의 순종에서 나는 향기입니다. 눈에서 나는 향기입니다. 대상을 아름답게 보려 하며 그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하는 행동은 눈이 아름다워지는 일이며 대상을 아름답게 보는 일은 당신의 눈이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일을 성경은 올람이라 합니다. 눈으로 은혜를 입고 그 은혜를 나누어 주는 일은 하나님을 향해 눈을 고정하는 일입니다. 눈을 어떻게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받음과 구원받지 못함으로 달라집니다. 영원을 위하여 살아가려 눈을 고정 시키는 일입니다. 눈을 높이 들어 물, 곧 말씀을 보아 그대로 따라 우리도 영원히 살려하는 일은 언제나‘...ל’(라메드)를 성경은 사용합니다. ‘...ל’(라메드/예수님의 날을 위하여, 1: 1-2: 3)41회로 예수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바라보고 그대로 따라 사는 삶은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하는 일입니다. 나를 위하여 사는 일이기도 합니다. 푸른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 나날은 번제를 올림의 나날입니다. 성경언어 올람은 번제의미이며 예수님의 희생을 눈으로 보고 산 삶을 따르는 일입니다. 눈을 높이 들어 물, 곧 말씀의 사역으로 번제드리는 일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번제들이기 위해 존재합니다. 증거궤의 증거증거와 아들에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의 큰 글자 증거아들이 제시하듯이 아들, 처음과 끝인 아들을 믿는 증거의 삶입니다. 홀로 쓰이지 아니하고 비밀스러운 영원을 믿는 사람들이 가지는 일입니다.
한국인들은 유난히 아들을 좋아합니다. 아들은 눈으로 보이는 가슴을 가지게 합니다. 가슴에 담긴 아들이 있어서 서로 사랑하며 선한 일을 하기 위해 모입니다.모이어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며 뵈오려 모입니다.모이는 곳은 하나님이 증인 아들이 있는 곳입니다. 여럿이 무리지어 증인이 되려 서로 바라보며 즐거워하며 밤낮을 보내며 모입니다. 증인 무리의 무리들은 모여 서로 사랑합니다. 불순종자들을 바라보며 믿으라 전합니다.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지는 󰕌+󰕌ר󰕌 ר󰕌󰗡󰕌+󰕌의 글자의 뜻처럼 족장대대로 물려가며 믿는 집안이 되는 것입니다. 대대로 이어지먀 눈으로 이어지는 일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듯이 우리의 하나님을 믿는 대대로 이어집니다.
눈은 아주 중요합니다. 소경이 보는 일(7:21-22)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4:18)되는 일을 존 칼빈(John Calvin)은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교회와 그리스도를 떠나 있는 상태가 눈 먼 상태이며 이들에게 회복되는 일은 눈 뜨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Bock은 어두움과 빛의 비유적 표현으로 영적 어둠에 있는 자에게 예수님의 빛이 비친 것· 박윤선은 죄로 인하여 어두워진 자의 회복· 렌스키(R. C. H. Lenski)는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는 포로들의 개안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김득중은 실제로 눈 먼 자의 눈을 뜨게 하는 이적· 글자그대로 눈 먼 자를 눈 밝게 함을 행하는 일은 시인이 할 일입니다. 눈 먼 자들의 치유(7:21-22 18:35-43)를 보고 빛으로, 나아가는 일(28:18)입니다. 여리고에서는 예수께서 지나갈 때에 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주여 보기를 원하였습니다.
소경이 보는 일은 믿음이 너를 구원할 때(18:35-43)입니다. 의사였던 누가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왔을 때 고침을 받을까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였다고(6:9-10) 합니다. 눈의 중요성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28:25-27)진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좋아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1:4)이고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1:12)입니다.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1:18)입니다.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1:21)입니다.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1:25)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1:28)입니다.
 
4. 깊은 눈과 깊은 샘과 우물
샘이 깊은 물은 마르지 아니합니다. 보는 깊이가 깊으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히브리 우주상에서 바다 심해에는 하나님의 거대한 힘이 솟아오르는 샘의 원천이 있습니다.성경은 하늘과 바다 깊음을 같은 언어로 표시합니다. 맑고 맑은 샘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샘물입니다. 맡아놨다는 발음인 이 샘들에서 공동 동일 어 눈이 발견됩니다. 눈과 샘의 동일시는 바다의 깊은 원인이 바로 깊은 하늘 창이 열리어 하늘 깊음의 샘물이 하늘 아래로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아주 깊고 신비한 바다 깊숙이에서 솟아난 샘물과 동일합니다.
바다뿐만 아니라 하늘의 창들이 열린 깊음도 같은 성경 언어 눈 혹은 샘의 의미로 동일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펼쳐놓은 것으로 그에게서 온 깊은 물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 좋은 깨끗한 물, 깊은 물인 그로부터 온 깊은 물은 더러운 물과는 다릅니다. 더럽고 추한 다신들이 모여 사는 바다와는 다른 물입니다. 성경의 더러운 물은 깊은 물, 깊고 깊은 물이 아닙니다.
그로부터 온 깊은 물이며 깊은 바다의 샘들입니다. 살아남음과 죽음의 엄격한 차이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옳은 손, 오른 손으로 이끄시는 바다 안에서의 하나님의 다스림에 의해서입니다.
이 눈과 샘의 동일 언어로 구조는 복수 바다들과 깊음의 친족성은 바다 깊음뿐만 아니라 하늘의 창들이 열리는 깊음과 바다의 샘들에서입니다. 깊고 맑은 샘들의 눈이 두 번 되풀이 되며 하늘 깊음의 물과 바다 깊음의 물이 연관성을 갖습니다.
다비드 토시오(David Toshio. Tsumura)는 아카드어와의 긴밀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을 통한 신의 존재에 대한 거대한 수직성은 하늘에서 비와 땅에서 솟는 우물 혹은 샘물의 이어짐을 제시하였습니다. 토시오는 데이(Day)의 말을 인용하면서 테홈 어원의 불확실성의 신비로움을 들고 신의 의미로 정의를 내린다.올레손도 솟아오르는 물(spring)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의 수직성을 들었습니다.다비드 토시오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태홈 곧 깊음의 독특성을 하나님의 절대 비밀스러움· 다비드는 창 1: 2에 얌이 없다는 것은 바알은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태홈과 틈 발음은 한국어식으로 보면 틈과 태흠은 뜻 뿐만 아니라 발음 또한 같습니다.
다비드는 얌과 우물의 연관성을 하늘과의 수직성으로 하였습니다.쌍수 바다와 우물을 같은 이미지로 하여 신화에서의 얌이 아니라는 표현을 “yām does not appear in Gen 1: 2"라 하였습니다. 카시러(O. Kaiser)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동시에 깊은 하늘 창이 먼저 열리어 하늘 깊음의 샘물이 하늘 아래로 내려오고, 바다 깊숙이에서 솟아난 샘물의 심연과 만나는 바다 얌과는 아주 다른 변별성을 표출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눈의 의미는 각별합니다. 아가서에서도 사랑하는 자의 눈 의미와 동일시하여 살아남은 회복성으로 하였습니다. 곧 하늘 높은 곳에서 내리는 맑은 샘들 그로부터 온 샘물과 샘들에서 솟는 물의 동일시는 그 목적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을 위한 물이며 동시에 눈입니다. 아가서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과 서로 눈을 마주하는 눈이 곧 맑은 물입니다. 이때의 물은 말씀입니다. 말씀이 답(1: 15, 5: 12, 7: 4)입니다.
맑고 맑은 샘이 되는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온 샘물 이어서입니다. 샘물은 눈과 언어가 동일합니다. 크고 맑은 물이 된 아주 깊고 깊은 바다 속, 물은 하늘의 창들이 열리어 하나님으로부터 온 깊은 물입니다. 이 깊은 바다의 샘들 언어들은 모두 눈과 동일어입니다.
눈과 샘의 동일성은 깊은 하늘 창이 먼저 열리어 하늘 깊음의 샘물이 하늘 아래로 내려오면서, 바다 깊숙이에서 솟아난 샘물의 심연과 만나 회복하였습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의 눈이며 그 눈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감사하는 때의 눈은 여호와의 선히 여기심에서입니다. 하늘 바다 깊은 곳에서의 물 백성의 눈이 셋이 합하여져 기적이 일어난 이 뜻을 와트(N. Wyatt)"Water, water everywhere...,"에서 하나님이 노아에게 은혜로(6-8), 아들들에게는 축복(9: 1-4)하는 때라 하였습니다. 많은 양의 물이 흐르는 강과 우물의 서로 만남 이미지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는 때입니다. 그 때는 그와 이스라엘 백성의 눈이 만나는 때이며 하나님이 감찰하시는 때입니다.은 하나님의 백성의 눈이 그를 갈망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샘(fountain)은 은혜가 있는 곳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 은혜가 먼저 있음을 발견한 감동으로 120년 동안의 하늘만 바라보며 우물 깊이를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선히 여기심의 의미리듬을 하나님의 눈 안에그대의 눈에와 모든 깊음의 샘들으로 한 동일의미를 제시하였습니다. 이 반복 리듬은 심연의 샘이 솟고 하늘의 거대한 창이 열려 나온 물(7: 11)위에 배가 떠 노아는 살았습니다.
샘과 눈과의 관련성은 하나님의 눈이 보살핌을 큰 의미비중으로 하였습니다. 샘의 깊이만큼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눈의 깊이가 있는 곳은 배 안(U)입니다. 배아래 그 깊은 바다 속에는 하나님의 깊음의 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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