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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마두금 (馬頭琴) 이야기 (80매)'
2009-09-08 21:41:49
yookh

조회:1859
추천:115

단편소설
마두금 (馬頭琴) 이야기 (80매)
                                유 금 호

몽골 현악기 ‘마두금(馬頭琴)’연주를 혹시 직접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 모르겠어요.
선배에게서 일본감독이 몽골에서 찍은 ‘차강모르’라는 영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오래전이었습니다.
‘차강모르’는 ‘백마(白馬)의 뜻으로 ‘마두금’에 얽힌 몽골 유목민 전설을 영화한 것이라 합니다.
‘후후 남지르’라는 가난한 청년에게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는데, 주인이 심술이 나서 청년을 먼 곳으로 보내버렸다고 해요. 그러나 청년에게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천마(天馬)가 있어 매일 밤 애인을 만나러 왔는데, 심통스러운 주인이 그 말을 죽여 버렸다는군요. 그 죽은 말이 청년의 꿈에 제 꼬리털로 악기를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해서 두 줄짜리 현(弦)의 말 머리 모양 현악기가 만들어졌다, 는 내용이라고 해요.

말 등에 오르면
가지 못할 곳이 없네
말 등에 오르면
죽지도 않는 다네
말이 스스로 길을 찾아
원하는 곳에 데려다 준다네

‘마두금’에 대한 조금 더 극적 전설이 있는데 나는 그쪽이 더 마음에 닿습니다.
옛날, 궁벽한 몽골 초원에 ‘수케’라는 젊은이가 살았는데, 한 겨울 밤, 말 울음소리에 잠이 깨어 달빛 아래 죽어가는 하얀 어미 말을 발견합니다. 그 어미 곁에 갓 태어난 눈처럼 하얀 새끼 말을 발견하고 청년이 정성을 다해 길렀다는군요.
몇 년지나 그 새끼 말은 멋진 경주마가 되었습니다. 마침 1년 한 번씩 열리는 몽골 전통 스포츠 축제 ‘나담’이 열려, 말 경주에서 ‘수케’의 백마가 우승을 차지한 거예요.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백마를 마을의 관리가 빼앗아 가 버렸어요.      다음 날 밤, 말 울음소리에 밖으로 뛰쳐나간 ‘수케’는 온 몸에 화살이 꽂혀 죽어가는 백마를 발견했습니다. ‘수케’는 말을 안고 통곡하다 의식을 잃었습니다. 주인을 잊지 못해 탈출했지만, 병사들 화살을 맞아 숨을 거둔 백마는 ‘수케’의 꿈속에서 자신의 뼈와 말총, 가죽으로 악기를 만들고 머리모양을 새겨달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만든 악기가 ‘마두금’이라고 해요.  원래 2개의 현(鉉)중 하나는 숫말 말총 130개, 다른 줄은 암말 말총 105개로,  본체도 말가죽을 씌우고 현을 켜는 활 역시 말총을 재료로 썼다고 합니다. ‘마두금’을 몽골어로 ‘모린 호르(Morin Khuur)'라고 하는데 ’모린‘은 말(馬), ‘호르‘는 음악의 뜻이랍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 초원의 바람 소리, 야생마 울음소리,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소리처럼 들려 ‘초원의 바이올린’,‘초원의 첼로’로 불려 유네스코(UNESCO)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도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연주자가 무릎 앞에 악기를 비스듬히 세우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줄을 누르면서 말총 맨 활을 왼손에 쥐고 문지르며 연주를 합니다.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그날, 몽골 ‘울란바토르’ ‘부양우카(Buynt-Ukaa)’ 공항 하늘 색깔을 잊을 수 없습니다.
6월 중순이었는데도 목덜미에 스치던 그 서늘하던 냉기, 그때 기온이 17도C였다고 선배가 알려주었지요. 그 하늘 색깔이 맑은 공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린 시절의 가을 하늘 색깔을 기억해 냈으니까요.
그곳 ‘바양고비’ ‘겔’에서 묵었던 이틀 동안 하늘 색깔도 내내 같았습니다.
엄마의 유전자 한 조각이 내 안쪽에서 고개를 내민 것은 그 ‘바양고비’에서 하루를 지나면서 ‘겔’ 천정으로 기어들던 새벽 별들과 차가운 냉기에 젖어있던 이튿날 아침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아빠는 한 달에 두어 번, 때로는 두 달이나 지나 한 번 엄마와 나를 보러 오셨어요.
사업 때문에 아빠는 늘 외국에 나가셔야한다고 했어요. 이번은 어디 다녀오신 건데요? 중국, 어느 때는 일본, 때로는 상상 속 악어가 우글대는 섬나라, 사자가 울부짖는 곳, 북극곰 사는 북극 항구에도 아빠는 다녀오셨다고 했어요. 나는 그  나라들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리는 눈을 부비고 했는데, 그때 엄마가 내는 한숨소리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빨간 가죽구두나, 시골 가게에는 없는 초코리트와 젤리과자, 16가지 색 크레파스도 아빠는 사 가지고 오셨어요. 이거는 일본, 이것은 파리에서 샀지, 우리 공주님 주려고...  시골 아이들이 꿈도 못 꿀 선물들을 받으면 아빠가 집에 계시지 않는 것이 은근히 자랑스러웠어요.  
여름방학이 가까웠던 5학년 초여름이었습니다.
눈을 뜨자 아래위 흰옷을 입은 엄마가 서둘러 내 옷을 갈아입히고는 아무 말씀도 없이 읍내로 가는 버스를 탔어요. 정류장에 내리자 내 손을 잡고 엄마는 읍내 사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로 올라가 나를 밭둑에 앉혔어요. 한참 뒤, 울긋불긋한 꽃을 잔뜩 단 상여 하나가 거리에 나타났습니다. 엄마는 그 상여 쪽을 향해 내게 두 번 절을 시켰어요. 엄마 얼굴이 너무 하얗게 되어 있어서 나는 무슨 일인지 묻지도 못하고 멀리 보이는 상여 쪽을 향해서 절을 두 번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앉아 있던 언덕의 밭에는 콩 포기들이 시퍼렇게 자라고 있었고, 그 콩밭 군데군데 키 큰 수수들이 바람이 불때마다 꺼덕거리고 있었던 것도 생각이 납니다.
이별이 어떤 것인지, 이승과 저승이 얼마나 먼 곳인지 짐작도 못해보던 열두 살, 그렇게 나는 아빠를 보내드렸어요. 보내드린 게 아니고 아빠가 나를 떠나셨어요.
그 후에도 돌아가신 아빠에게 가까이 가서 왜 절을 할 수 없는지, 제삿날이며 명절날, 산소 앞에 술 한 잔  올릴 수 없는지를 이해하게 될 무렵, 저는 생각했어요.
나는 자식을 낳지 않을 거다. 남자를 사랑하는 일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겔에서 밤을 지낸 그 초원의 아침, 가이드가 여러 마리 조랑말들을 끌고 왔었지요.
여행객들이 너도 나도 아이들처럼 조랑말에 올라 초원 위를 움직이고 있었을 때, 말 대신 그 곁에 낙타 고삐를 잡고 있던 일행 중 한 분이었던 훤칠한 모습의 중년남자, 선생님은 그때 눈짓으로 내게 낙타를 타보라고 했어요.
무릎을 꿇고 있던 낙타는 내가 등에 오르려하자 몸을 흔들고 고개를 저으며 입으로 침을 뱉어댔지요....이 놈 봐라. 짐승들이 영악해서 여자나 어린아이들을 알아본다더니......가만있어.... 목을 두드려 낙타를 달래면서 내 손에 고삐를 쥐어주었을 때, 그래요.
그 순간이었어요. 새파란 하늘과 초원을 배경으로 흰 이를 드러내며 웃던 선생님 모습이 어쩌자고 유년시절, 딱 한번 제주도에서 조랑말 위에 나를 번쩍 안아 올려주던 아버지 생각을 나게 했을까요? 그것을 운명이라 한다면 너무 가혹한 거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조랑말을 탔는데, 선생님과 나, 두 사람만 낙타를 타고 초원을 한 바퀴 돌았어요.
30분 쯤. 하늘과 초원, 우리가 묵었던 ‘겔’이 물결처럼 출렁였던 그 30분의 시간이 내게는 10년 세월보다 더한 체험이었습니다.
그날 밤 짐승들 배설물 말린 땔감으로 초원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았을 때, 가이드가 ‘마두금’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막에서 낙타가 새끼를 낳은 뒤, 출산의 고통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새끼에게 젖을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했어요. 그럴 때면 마을 원로가 ‘마두금’을 켜면서 어미 낙타를 달래준다는 이야기였어요.  
.... 모든 것은 바람 속 티끌처럼 사라지는 것이니라, 아파하지 말아라, 고통에 목매지 말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떠돌아라..... 고통은 영혼의 지팡이... 고통이 있음으로 너는 설 수 있는 것이니.....
몽골 벌판에서 바람처럼 한 평생을 살아온 촌로(村老)만이 할 수 있는 위로와 마두금 연주를 듣고 나면 어미낙타는 눈물을 흘리면서 새끼를 핥아 주고 젖을 먹인다는 이야기가 가슴을 아리게 했습니다.

‘마두금’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곳 몽골 초원의 사소한 기억까지 의식 깊숙이 각인된 것은 그것이 내 첫 해외여행이었던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질리게도 계속되던 초원과 지평선, 수 백 마리, 수 천 마리의 양떼와 말들, 띄엄띄엄 서 있는 천막집, ‘겔’ 사이로 말 등에 올라 짐승들을 몰던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소년들 모습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다섯 살 때부터 말 타기를 배웠다는 ‘암부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에게서 초원을 뒤덮고 있는 개양귀비를 닮은 작은 흰 꽃 이름이 그곳 말로 ‘지츠크‘라고 불린다는 것을 배웠고, 보라 빛의 작은 꽃은 ‘옵스’, 강가 버들강아지를 닮은 키 작은 나무는 ‘모르갓스’라는 것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낙타에 흔들리면서 지나갔던 돌무더기 위의 푸른색 깃대, 그 돌무더기 위에 올려놓은 돈이며, 심지어 말 머리뼈까지.....그들 소원을 비는 성황당 역할의 그 장소가 ‘어와’이고, 거기 꽂아 놓은 푸른 천의 깃대를 ‘하득’이라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날 잠시 낙타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아이릭’이라고 불리는 마유주(馬乳酒)두 대접을 우리에게 권하던 아주머니의 얼굴과 그 덧니까지도 기억하는걸요. 머뭇거리는 내게 앞서 맛을 본 선생님이 막걸리 맛과 비슷하다고 내게 마셔보라고 권하던 음성 역시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나담’ 축제의 승마대회에 세 살짜리 꼬마 애들부터 35k 거리를 달린다는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소 한 마리를 건포로 말리면 배낭 두 개에 다 들어갈 수 있다는 그들의 갈무리 습성이 과거, 지구의 절반을 휘달릴 수 있는 역동성이었을 것이라는 짐작도 들었고요.   남녀 구별 없이 말 등에 오르면 초원을 나르듯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 속도 앞에 과거의 한 시기, 정착 농경민족들이 감히 몽골족을 대항할 수 없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아요.   짐승들이 가는 데로 뒤를 따라 잠시 머물고, 다시 떠나는 유랑의 습관을 지켜 가는 동안, 세계는 빠르게 변해 갔고 그들 역사는 천천히 화석처럼 묻혀 갔으리라는 짐작도 되었어요.
그리고 유목민족답게 그 초원 어디에도 ‘친기스칸’의 공식적인 무덤이 없다는 이야기는 충격이었어요.. 그 초원에 180마리 표범 가죽을 덮었다는 그들 황제의 ‘겔’을 중심으로 수만, 수 십 만개의 천막이 질서 정연하게 펼쳐진 위용을 상상해보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아무 것도 없음으로 해서 자유롭게 펼쳐지는 웅장한 도시와 말 발굽소리와 그들의 숨소리...... 무덤을 갖지 않음으로써 ‘친기스칸’의 무덤은 유럽까지 진출했던 넓은 영토 어디에나 수십, 수백 개로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초원 곁으로 시내물이 흘러가는데도 적은 양의 물을 길러 와서 사용하고 그 물을 초원에 뿌려 자연 속에 다시 여과시켜 버리는 절제. 강한 햇볕으로 얼굴이 타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날고기 비계를 얼굴에 문질러 대는 그들을 야만스럽다고 비웃을 수 없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어둠이 덮여오는 초원에서 ‘호모스’(말똥)과 ‘알라가스’(소똥)로 모닥불을 피워 놓고, 바라보았던 주먹만큼씩 크던 별들.... 그러나 선명하고 강렬한 초원의 기억들은 첫 해외나들이 때문만은 아니란 걸 아시지요?
그날 아침 낙타 고삐를 쥐고 있었던 선생님과 나란히 했던 30분간이 아니었다면 그 모든 기억은 이미 흐려졌을 거예요.

이번 ‘이스트 섬’ 여행 전에 내게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난 해 ‘자궁근종’ 진단을 받고나서 자궁을 드러내는 수술을 받았거든요.
수술 전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신 줄 아세요? 초기 단계여서 다른 기관으로 전이만 되지 않았으면 적출수술로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고 그랬어요.
‘정상적’이라는 단어에 의도적으로 힘을 주는 것 같아 갑자기 그때 나는 웃음이 터질 뻔 했습니다. ‘정상적’이라니요? 다른 사람에게는 자궁을 적출한 일이 비정상적이라해도 내게만은 그것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이 마흔 넘은 여자가 사용해보지 않은, 앞으로도 사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기관을 제거하는 일이어서 ‘정상’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금년 봄,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보통 때 낮에 TV를 켜는 일이 거의 없는데, 그날 아침은 어떻게 TV가 켜 있었어요. 그리고 우연히 화면에서 ‘마두금’연주를 간접적이나마 보고 들은 거예요. 동물관계 프로였는데, 우리나라 지방 어느 목장이 무대였습니다.
새끼 낳은 어미 소가 젖을 주지 않아 주인이 엄청 고민을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옛날 첫 새끼 때도 젖을 먹이지 않아 죽은 새끼 무덤을 주인이 목장 뒤 언덕에 만들어 주었는데, 두 번째 새끼 역시 젖을 주지 않고, 뒷발로 차서 다리가 골절된 채 중송아지로 자란 모습이 화면에 비쳐졌습니다. 세 번째 새끼를 주인이 시간 맞추어 우유를 타 먹이고 있었습니다. 왕진 온 수의사도 고개만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방송 제작진이 몽골 악사에게 ‘마두금’을 들려 그 목장으로 데려왔어요. 몽골 전통 복장의 악사가 어미 소 곁에서 ‘마두금’을 연주하는 동안 제작관계자도, 수의사도, 목장 주인도, 시청자들도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직접은 아니라 해도 TV 속의 ‘마두금’ 소리는 흐느끼는 듯, 바람 소리인 듯 끊길 듯 이어지며 전신에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딴청 피우던 어미 소가 마두금 연주가 끝날 무렵, 고개를 돌려 큰 눈을 껌벅거리더니 거짓말같이 새끼소의 몸을 긴 혀로 핥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장 주인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고, 방송 PD역시 손수건을 꺼내 드는 게 화면에 보였습니다.
전설이 사실이 되는 그 순간 나 역시 울고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울음소리조차 내지 않는 간난아이를 이틀 동안 윗목에 밀쳐두었다던 엄마, 불어나는 젖이 너무 아파 사흘만에야 아이에게 젖꼭지를 물렸다는 돌아가시기 전의 고백을 떠올리면서 울었습니다.
그러다 잠시 그 ‘마두금’ 소리를 선배가 들으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울음을 그쳤습니다.

도쿄까지, 다시 타히티, 그리고 ‘이스트 섬’까지 5시간 밤 비행은 몹시 피곤했습니다.
밤 12시가 지난 시간의 타히티 출발의 비행기 출국장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출국수속을 끝내고 출국대기실에 들어섰는데 한 쪽 지붕이 휑하게 뚫려 반달이 휘영청 떠 있어요. 건물 지붕 절반이 개방되어 하늘이 열려있었고, 그 쪽에서는 승객들이 자유롭게 담배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출국 게이트 표시등에 ‘Easter Island'의 표지가 없었어요.
선배가 주위 사람들에게 영어로 물었지만 모두 우리 질문의 뜻을 모르는 표정이에요. 한참 후에야 저쪽에서 한 중년의 백인이 지금 떠나는 비행기가 맞다고 했어요.
출구게이트 표시등에는 'Santiago' 그 아래쪽에 경유지로 ‘Isla de Pascua’라는 표시밖에 없었거든요.
‘Easter Island’의 칠레식 이름이 ‘Isla de Pascua’, 원주민 이름으로는 ‘큰 섬’이라는 뜻의 ‘Rapa Nui’로의 어둠 속 5시간의 비행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딴 곳이라는 이곳 ‘이스트 섬’의 ‘모아이’ 석상을 보러 오게 된 것은 선배 언니가 거의 강권을 행사하다시피 했어요.
참, 선배 언니 이야기를 안 해 드렸네요.
세상의 기존관념, 습관, 그 모든 것에 도전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이해되실 수 있을까요?
선배 이야기를 앞서 해야 했는데 순서가 바뀐 셈이 되었습니다.  약사가 직업인 나보다 두 살 위 언니뻘 선배랍니다.
친 언니와 함께 동네 작은 약국을 경영하는데요. 그런데도 그 약국 경영에 선배가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 소화제라도 사러 그 약국에 들렀다가 선배 혼자 있을 때는 약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너 약 먹지 마. 약이라는 게 다 속임수야. 이 약 먹으면 낫겠지, 환자 혼자 자기 최면에 걸려 치료되는 거야. 자생력으로 치료되는 거지, 약으로 치료되는 거 아니다, 너....약으로 병이 다 치료되면 죽는 사람이 왜 생기니? 몸이 말야, 더 이상 병하고 싸워서 못 이기면 할 수 없이 죽는 거지.
감기 기운으로 약을 사러 약국에 들렀다가 선배한테 세뇌만 받았어요.  
자기 언니가 교대하러 약국에 들르자 선배는 나를 자기 차에 태워 팔당댐 쪽으로 달렸어요. 약보다 더 좋은 치료방법이 있다고, 선배는 나를 팔당댐 수문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의 장어 집으로 데려가서 장어구이를 시켰어요. 내가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선배는 소주 한 병을 혼자 비웠어요. 다음 기회에 자기가 안 마실 때 나더러 혼자 술을 마시래요.
그날 혼자 술을 마신 선배에게서 선배가 ‘싱글 맘’인 것을 처음 들었어요.
- 결혼 하는 것, 남편을 갖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이다. 너. 그런데 나는 원래 사람과 얽히는 관계가 질색이거든. 애인을 가지는 것, 더구나 결혼, 나는 일찍부터 그쪽하고는 선을 그었어....그런데 이상하더라. 미친 소리 같지만 마흔이 가까워지면서 아이가 갖고 싶은 거 있지. 결혼도 싫고 남자도 싫지만 아이를 낳고 싶은 것, 자궁이 있으니까 가지고 있는 기관을 한 번은 활용해주는 게 창조주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가졌다고 해요.
엄청 충격이었어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내 몸 안에도 아이를 담을 수 있는 기관이 있었으니까 나도 선배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을까, 그 생각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아이라는 것은 한 남자와 여자가 몹시 사랑하게 된 결과라고...하지만 사랑한다고 해도 그것이 사회의 관습에서 벗어나게 되면 본인들만 아니라 아이에게까지 고통의 파문이 너무 큰 것이라고..그래서 나는 아이 같은 것은 가지지 않겠다고 오래 생각해 왔거든요.
아이만이 아니라 남자를 사랑하는 일도 그냥 혼자만 간직하는 게 더 현명할 것이라고 그렇게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선배에게는 엄마가 되는 일과 누구를 사랑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습니다.
그 선배 언니 되는 사람도 특별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약국 경영에 선배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데도 동생을 끔찍하게 아끼고 이해하는 것 같아요. 태어난 아이도 선배는 기분 내킬 때 가끔 엄마 노릇을 할 뿐, 실제 양육은 언니 몫이었구요.
옛날 선생님을 만난 그 몽골 여행도 선배 때문이었어요.
어느 날 부터인가, 나는 선배의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 착한 후배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선배의 삶 속에 내가 상상하지 못한 세계가 있었거든요.

바양고비 초원의 그날 아침에도 선배는 맨 앞서 조랑말을 타고 초원을 가로질러 가버렸어요. 나는 한 순간 엄마 손을 놓진 꼬마같이 잠시 허둥대었지 싶어요. 그때 내 앞에 낙타 고삐를 잡고 선생님이 서 계셨어요.  

신화 수준의 ‘모아이’ 실체를 꼭 확인하겠다는 선배의 바람은 여러 해 전부터였답니다. 기본 관념으로 굳어진 모든 것들이 선배는 못마땅하고, 그래서 도전하고 싶어 하고 그래요.
20톤이나 되는 석조물을 우주인들이 축조했다고도 하고, 그 거대한 석상들이 새로운 세계를 기다리며 모두 바다 쪽을 향해 서 있다고도 하고..    
그런데 실제 우리들이 확인한 석상들에서 맨 처음 무얼 본 줄 아세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아이’는 ‘아후 아키비’의 해안에서 2㎞쯤 떨어져 있는 ‘모아이’ 일곱 개뿐이었습니다.
‘호투 마투아(Hotu Matua) 왕’이 일곱 명의 신하와 이 섬에 왔다는 전설과 함께 섬 주민들을 지키려는 듯 그곳 ‘모아이’들은 바다 쪽을 노려보고 서 있지만, 섬 안에 있는 다른 ‘모아이’들은 모두 바다에 등을 보이고 마을 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자식을 낳지 않을 거다. 남자를 사랑하는 일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의 혼자 했던 이 약속은 이제 고민하지 않고 지켜지겠지요
내 의지가 아니라 여전히 타의에 의해서요.
자궁이 없는 여자. 자궁을 들어내 버린 여자. 상상이 가세요? 한 번도 생명의 씨앗을 심어보지 않았고, 생명을 키워낼 계획도 없는 기관이라면 드러내버리는 것이 신이 생각하게에는 더 경제적인 것이었을까요?
하지만 지난 해 그 수술의 충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사실, 엄격한 의미, 여성도 남성도 아닌 중성의 몸은 이성으로 보다는 감정으로 충격이었어요. 엄마처럼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는 결심, 남편을 싣고 가는 상여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소리를 내어 울 수도 없는 엄마의 삶이 사춘기 내내 나를 얼마나 괴롭혔겠어요?  

15개의 모아이가 모여 있는 통가리키(tongariki) 지역에서는 어쩔 수 없이 흩뿌리는 비를 그대로 다 맞았습니다.
한때 쓰나미에 휩쓸려 흩어져버린 것을 일본의 건설회사 ‘타다노’가 그곳까지 기중기를 운반해 와서 복구해주고, 그 인연으로 ‘모아이’ 한 개를 오사카박람회에 옮겨갔다가 되돌아와서, 그 한 개는 다른 14개와 떨어져서 혼자 서 있었고요.
일본까지 다녀왔다고 ‘바람난 모아이’, ‘외출한 모아이’로도 불린다네요.
그 ‘바람난 모아이’곁에서 젖기 시작한 겉옷은 산꼭대기 채석장에 올라가서 만들다 둔 미완성 석상들과 옮기다가 버려 둔 모아이들을 확인할 무렵에는 완전히 젖었습니다. 그러나 산정의 바람에 옷은 두어 시간 후, 다시 건조되었어요.
실제로 모아이를 굴러 내렸던 지점으로 여겨지는 미끄럼 장소가 지금도 남아있었습니다
산자락으로 옮겨진 모아이는 멀게는 20㎞ 떨어진 해안까지 운반돼 세워졌으니 엄청난 토목 공사였을 것입니다. 토목공사에 나무들이 사용되어 섬은 황폐해졌고 환경이 변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도 해야겠네요.
첫 멘스가 있었던 무렵 아빠가 오셨어요.
작은 소리로 엄마가 아빠에게 내게 온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것 같았어요.
아빠는 밥상 앞에 나를 한 팔로 끌어안은 채, 술을 혼자 여러 잔 따라 잡수셨어요. 아빠는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았어요. 엄마가 나를 끌어안고 흐느끼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아빠의 그 반응이 참 많이 이상했어요. 엄마는 내 머리를 가슴 가까이로 끌어당겨 놓고 말없이 그렇게 우셨는데....


다시 말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야 합니다.
묵고 있는 이곳 ‘항가로이’ 마을 숙소는 대학 때 MT를 갔다가 여럿이 묵은 적 있는 강원도 산골 민박집같이 생겼습니다. 시멘트 ‘모아이’ 모조석상이 열대 식물들 사이에 버티고 있는 마당을 안고 슬레이트 지붕을 한 긴 ‘ㄴ'자 형태 공간에 방이 여섯 개인가 길게 붙어 있고, 방 뒤쪽 작은 창이 뒷마당으로 나있는 그런 집이랍니다.
오늘 새벽이었습니다.
종일 비까지 뿌리는 산등성이를 돌아다니느라 깊은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날이 새기 전, 새벽 시간이었는데, ‘저리 안가? 안 가?’ 하는 선배목소리에 놀라 잠이 깨었습니다. 뒷마당으로 열린 창 앞에서 선배가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왜, 그래? 언니.
잠이 덜 깬 채 선배 어깨 너머 뒷마당을 내다보다가 하마터면 주저앉을 번했습니다. 커다란 몸집의 말 한 마리가 여명 속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어요.
-저게 이 창문으로 고개를 쓱 내밀고 방 안을 둘러본다, 기가 막혀... 저거 수컷이다. 너.
말은 우리가 놀라거나 말거나 그 자리에 서서 똥까지 푸드덕거리며 싸고 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앞마당 쪽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용케 저 게 젊은 여자 둘 있는 것을 알고 찾아온 거 아니겠어?
선배는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키득키득 웃어댔습니다.
나는 그 순간 왜 마두금(馬頭琴)을 떠올렸는지 모르겠어요.
- 왜 저 말이 수컷인지 아니?
-.......
-원래 말이란 건 수컷의 상징이거든.
-말도 안 돼.
-저게 물건이 얼마나 큰 지 알아? 우리 팔뚝보다 더 크고 길다. 그런데 사실 교     미시간은 싱겁게도 몇 초면 그만이거든.
-별 희한한 이야기를 다 한다, 선배는..
-그래서 넌 ‘석기시대’야. 그것도 앞뒤 꽉 막힌 ‘구석기시대’.
가끔 선배는 나더러 ‘석기시대’라고 합니다.
섬 안에 말 기르는 목장이 있었지만 마을 앞 도로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말을 몇 마리 본 기억이 낫습니다. 말 뿐 아니라 숙소 앞 골목과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목줄 없는 개들이 이방인에게도 꼬리를 치면서 가까이 오기도 했었어요.

주소를 쓰지 않은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편지 봉투를 풀로 야무지게 붙이고, 우표는 침을 발라 꼭꼭 붙여서 우체통에 넣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다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주소를 쓸 수 없다는 것, 주소가 있다고 해도 지상의 문자로는 쓸 수 없는 주소, 옛날 주소를 쓸 수 있었을 때도 편지를 부치겠다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는데 세삼 주소조차 쓸 수 없는 편지를 저는 지금 쓰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실은 영구차가 그 가을날, 화장터를 향해 병원 문을 빠져나가고 있었을 때 나는 병원 후문 전신주 뒤에서 자동차가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어요.
딱 한번, 입원실 복도의 열린 문 틈 사이로 선생님의 환자복 자락을 보고 돌아선 날부터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선생님은 그렇게 떠나셨어요.
살아계실 때도, 누구와 헤어지는 일은 내게 항상 타의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듯싶어요. 살아오면서 내 의지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서도 앞서 내가 떠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번의 엉뚱한 이 편지가 내 생애를 통해 유일하게 스스로 선택해서 한 일일 거예요.
그날 병원 후문 전신주에 기대서서 선생님께도 마음속으로 두 번 절을 올렸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눈이 빨갛게 부운 엄마가 흰 옷으로 챙겨 입으시고, 내 손목을 쥐고 읍내로 가는 버스에 올라 작은 소리로 훌쩍이는 까닭을 알기에는 제가 너무 늦되었는지 몰라요.
멀리로 꽃상여 하나가 지나갔고, 쭈그리고 앉은 엄마가 내 손을 쥐고 흐느끼고 계셨는데도, 내 선물을 사 오시는 아빠가 다시는 내 겨드랑이에 큰 손을 넣어 빙빙 비행기를 태워주지 않을 것이란 것을 깨닫지 못했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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