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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캡틴 4회 끊긴 부분 연결
2009-05-23 22:56:40
bbh39

조회:1722
추천:103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하면서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두리번거렸다.

 

한참을 그렇게 구경하다 접어든 한 골목에서는 수많은 여자(女子)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전쟁터의 어느 곳이나 그러하듯이 그곳이 윤락가(淪落街) 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대부분 앳되어 보이는 얼굴 들이었다.

‘정글만 있는 나라인 줄 알았더니 이렇게 예쁜 아가씨들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다 문득 “녹음방초(綠陰芳草)”라는 말을 떠올렸다.

 

“녹음”이란 우거진 숲이란 뜻으로 이곳 월남 땅의 정글 지대를 연상케 하였고, “방초”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들녘에서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아무렇게나 자라난 풀(草) 들이지만 그 아름답기가 마치 꽃처럼 아름답다는 뜻으로 그녀들을 가리키기에 너무나도 안성맞춤으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즉흥시(卽興詩) 한 구절(句節)을 뇌리에 떠올리고 있었다.


             방초(芳草)


     이국 만 리 정글 숲 메마른 땅

 

     들녘 한복판에 노란색 산양 한 마리

 

     예쁜 방초(芳草)보고 절로 배불러진다네.

 

     방초야 이리 오너라, 어서 오너라.

 

     얼굴 붉히며 파란 잎 한 장 던져 주고는

 

     그녀 따라 어디론가 슬그머니 숨어들더라.

 

 

그러나 이내 나는 이런 비유(比喩)가 적절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녀들은 다만 전쟁의 희생물(犧牲物)일 뿐이었다.

꽃다운 나이를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이렇게 보내게 된 것일 뿐. 그녀들은 상처(傷處) 받은 풀들이었고 전쟁이 가져다준 부끄러운 아픔들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양 대령과 이 중령은 나에게 눈짓을 하며 무엇인가를 독촉(督促)하고 있었다.

나는 양 대령의 눈짓에 따라 떠밀리듯 터키탕(증기탕) 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대나무 침상(寢牀)이 여럿 놓여 있었고 낮은 칸막이가 둘러쳐져 있었다. 한증탕 문을 여니 뜨거운 김이 피어올라 왔다.

마치 별궁(別宮)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바로 그때 어디로 들어왔는지 속살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얇은 속옷 차림의 아가씨가 나를 반겼다.

열(熱)은 열로 때우고 냉(冷)은 냉으로 때워야 한다고 했던가?

열대 지방에서의 뜨거운 한증은 그것대로 또 하나의 짜릿함을 만끽(滿喫) 할 수 있었다.

 

얼마쯤이나 시간이 흘러갔을까?

나는 배가 고팠기에 무엇인가 먹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왔다.

홀에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던 양 대령과 이 중령의 몸에서도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양 대령이 짓궂게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와 함께 나온 그 아가씨 말이야, 양귀비 중에서도 으뜸가는 양귀비 같더군.”

 

“행운의 캡틴 박, 당신은 역시 행운의 사나이야!” 하며

연이어 이 중령이 농담 해댔다.

 

실제로 행운의 캡틴 박 이란 말은 월남군 장성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월남군 보병 제2사단장인 그는 월남 은성 훈장을 나에게 수여하고 나서 나의 가슴을 향하여 정중히 거수경례로 “예(禮)”를 표했다.

그들 나름의 특유한 훈장(勳章)수여 방식으로 국가의 상징물인 훈장에 대한 예의 표시였다.

 

아무튼, 나의 가슴에 훈장을 달아준 그는 악수를 청하며 영어로 말했다.


“캡틴 팍, 캡틴 팍, 당신의 전투승리는 우리 자유 월남공화국 역사에 오래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캡틴 퍽의 행운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영어 발음상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자유 월남공화국을 대표하여 감사함을 보여주는 진실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후 그들은 결국 패망(敗亡)하고 말았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그들과 함께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그들은 끝내 자유(自由)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런 까닭에 그들의 패망(敗亡)이 더욱 안타깝고 안쓰러울 뿐이다.

 

무능한 정부와 끊임없는 정파 싸움, 온 나라에 만연된 부정부패와 일그러진 국민정신(國民精神) 그리고 안보 불감증(安保 不感症)의 만연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만 것이다.

 

기적 같은 행운의 순간들이 있은 후 세월은 내 머리칼의 빛깔처럼 흘러가 어느덧 사십 여년(四十 餘年) 이 되어간다.

치열했던 전쟁터에서 행운의 상징물로 수여 받은 훈장은 지금 이 순간 나의 장롱 속 깊은 곳에서 가만히 녹슬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날의 일들은 내 기억 속에서 더욱 빛나는 빛깔로 반짝이고 있다.

흐르는 세월도 우리들의 위대(偉大) 함과 거룩함을 녹슬게 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날의 일들은 영원(永遠) 할 것이다. 그렇게 가만히 되뇌어 본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때의 일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꿈속에서 나를 찾아오곤 한다.

그 험난하고 위험했던 고비 고비가 스쳐 지나갈 때는 온몸을 뒤틀며 쩔쩔매느라 옷가지며 베개와 침구 전체를 흠뻑 적셔 놓곤 한다. 이것 역시 생(生)과 사(死)의 사선(死線)을 넘나들던 사람들만이 갖는 특유의 전쟁 병(戰爭 病)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면 서글퍼질 때도 있다.


                                                      2006년 5월 작가 박봉환


박봉환 문집 “꼬마각시와 꼬마신랑”

행운의 캡틴 중에서(016-362-8595) (4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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