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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캡틴 연속 3,4회 (종결)
2009-05-20 20:50:01
bbh39

조회:1730
추천:89

 박봉환 문집 “꼬마각시와 꼬마신랑“

행운의 캡틴 중에서(3회)


더구나 몰살할 가능성은 수적으로 불리한 아군에게 더욱 컸기에 그 절망감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상황이 위태로울수록 침착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잠시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여기에 있는 60여 명의 대원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평소에 갈고 닦은 전투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發揮)할 수 있는 용맹(勇猛) 성과 지혜로움, 그리고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줄 아는 위대한 군인정신(軍人精神)이 충만(充滿)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이 위험을 극복할 수 있도록 특별한 은혜(恩惠)가 있기를 하나님께 간절(懇切)히 비는 기도(祈禱)를 올렸다.

 

그리고 나는 지휘관(指揮官)이 당황하는 것은 곧 더욱 큰 화(禍)를 자초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이내 정신을 수습하고 소대장들을 은밀히 불러 모았다.

그리고 우리는 무언(無言)의 작전회의(作戰會議)를 시작하였다.


장 중위가 뒤쪽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해 보였다.

도저히 승산(勝算)이 없으니 몰래 뒤쪽으로 도망쳐 나가자는 제안(提案)인 듯했다.

나는 이내 최 중위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난히도 눈을 크게 뜨고 있던 그는 나의 가슴 쪽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해대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댔다.

전투 경험이 비교적 적은 그는 중대장의 뜻에 무조건 따르겠다는 표시(表示)인 듯 보였다.

 

그것은 바로 나와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뜻과도 같았다.

이처럼 다급한 상황 아래에서도 나를 믿고 나에게 목숨을 맡기는 그를 보며 저 순백(純白)한 영혼을 어떻게 지켜 주어야 하나?

아니, 그보다도 지금 이 순간 나의 손짓 발짓은 물론이요 내 얼굴의 주름살 하나하나 움직이는 것까지도 온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는 육십여 명의 중대원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마음의 무게가 더욱 깊어지는 것을 일순간 느꼈다.

 

그때였다. 항상 내 뒤를 따르고 있던 통신병 김 병장이 나의 옆구리를 쿡 찔러대면서 무척 당황(唐惶)하는 표정을 지었다.

전방(前方)의 적들이 우리가 가까이 와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전투 준비를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보고였다.

적진의 병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총기와 수류탄을 황급히 챙기는 것이 내 눈에 똑똑히 관측(觀測)되었다.

 

이제는 피하려야 피할 수도 없는 극한(極限) 상황에 이르렀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순간이 닥쳐온 것이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우리는 서 있었다.


그러나 더 지체하는 것은 오히려 아군의 죽음을 부를 뿐이라는 판단이 순식간에 섰다. 나는 이내 입술을 깨물고 단호히 지휘관(指揮官)으로서의 결단을 내렸다.


그것은 전투(戰鬪)였다.


살기 위한 싸움.

그러나 그것은 죽음을 각오한 싸움이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큰 소리로 외쳐댔다.

내 정신이 아니었다.

교육받은 그대로 훈련받은 그대로 외쳐댔다.

온 종일 닫혀 있던 입을 벌려 말을 하는 절박(切迫)한 순간이었다.

 

“사격개시! 사격개시!”

 

아군뿐만이 아니라 적군에게도 역시 들렸으리라.

우리는 분대장도 소대장도 그리고 탄약병이나 무전병도 가릴 것 없이 마구 사격을 해댔다. 사격을 하는 우리에겐 이미 계급(階級)이 없었다.

오로지 한발의 총알이라도 더 쏘아대야 이길 수 있다는,

아~아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지휘관(指揮官)이 사격에 가담하면 그 부대는 망(亡) 하고 만다는 선배들의 가르침도 이미 나의 뇌리 속에서는 사라지고 없었다.

중대장인 나도 정신없이 쏘아댔다.

지금 우리에겐 우리가 더 강하다는 힘의 과시(誇示) 만이 필요했다.

전쟁터에서 기선(機先)의 제압(制壓)이란 곧바로 승리(勝利)와 연결된다는 것을 나는 몇 차례의 전투경험을 통하여 늘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고자 지금 이 순간에서는 단 한발의 총알이라도 더 당겨야 했다.

 

머리카락이 성난 고슴도치의 그것 마냥 쭈뼛쭈뼛 서 왔다.


“드르륵 탕탕” “드르륵 탕탕”


육십여 명의  용맹스러운 병사들이 일제히 긁어(쏘아)대는 총소리는 마치 저쪽 산(山) 전체를 모두 송두리째 날려 버릴 것만 같이 온 천지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엠 16 소총을 연발로 쏘아 댈 때 그 속도와 위력이 그렇게도 대단하다는 것을 나 자신도 새삼스럽게 느낄 수가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교전하던 중 나는 나의 허리가 허전해지고 있음을 일순간 느끼기 시작했다. 나의 팔꿈치 옆으로는 시꺼먼 탄창통과 샛노란 탄피들이 수북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탄약이 떨어지면 큰일인데 라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문득 총기는 곧 나의 제2의 인생(人生)이라고 외쳐대며 그렇게도 열심히 닦고 조이며 기름칠하던 고국에서의 중대장 시절이 뇌리 속을 스치며 지나갔다.

 

언젠가는 부대원들에게 사격 연습을 열심히 교육하던 중 실탄이 부족하여 난감해지자 책임자들을 한곳으로 모아놓고 여기가 만약 실전 장(實戰 場)이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 것 인가라며 불호령을 치던 일도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의 여기는 그때 말하던 그 실전 장이 아니더냐?

총기와 탄약이 없는 전투는 전투가 아니라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리라.

 

그러나 지금 이 절박한 근접전투 상황 아래에서는 대원 각자가 얼마만큼이나 총을 쏘아댔고 얼마나 총알이 남아 있는지 알 수도 없고 또 알아볼 수 있는 시간도 허용되지 않았다.

오직 바라건대 평소의 교육 훈련 결과에 따라 소대장과 분대장들의 지혜로운 지휘 통솔과 각개 병사들의 용맹성만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탄약을 아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방의 적들을 더욱더 세세(細細)히 살펴보았다.

 

우리들의 갑작스럽고도 집중적(集中的)인 기습사격에 놀란 적들은 말 그대로 오합지졸(烏合之卒)이 되어 있었다.

적군의 진영(陣營)은 난장판이었다.

우리들의 연이은 집중사격이 그들에겐 아마도 우리를 엄청난 규모의 병력인 것처럼 오판(誤判)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지휘체계(指揮體系)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그들에게는 우리가 그들을 처음 발견하였을 때 느꼈던 그 공포감보다 몇 배나 더한 두려움이 밀어닥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직격탄을 맞고 쓰러져 신음을 해대거나 비명을 지르는가 하면 숲 속으로 도망을 치느라 엉금엉금 기어가는 놈도 보였다.

 

또 어떤 놈은 방향 감각을 잃고 거의 정신이 없는 듯 한없이 사격을 해 대는 김 중사의 코앞으로 바싹바싹 기어드는 베트콩도 있었다.

풍부한 전투 경험자인 김 중사가 그놈을 그냥 놓아둘 리가 없었다.

곧장 김 중사의 수류탄 세례가 연이어 퍼부어졌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우리 전열(戰列)의 약간 뒤편에 배치되어 있는 화기소대의 60밀리 박격포는 정신없이 포탄을 퍼부어 대고 있었다.

좌우 측 그리고 중앙의 어느 정도 앞쪽에 나가 있는 엠30 기관총은 총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한없이 총알을 뿜어대고 있었다.

또한, 여기저기에서 퍽, 쾅! 퍽 쾅! 하면서 위력을 나타내는 엠79 유탄발사기는 보기보다 훌륭한 근접 전투용 무기인 듯 제 몫을 다 해내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급기야 적진에서는 팔다리가 잘려나간 놈, 파편을 맞고 창자가 툭 튕겨 나와 있는 놈, 비참하게 쓰러져 꼼짝도 못하는 놈들이 뒤엉켜 지옥의 현장으로 돌변해 있었다.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전쟁터에서의 참혹성과 잔인함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을까?

지옥 같은 참혹한 전투 속에서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 그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박봉환 문집 “꼬마각시와 꼬마신랑”

행운의 캡틴 중에서(016-362-8595) (3회)

 






박봉환 문집 “꼬마각시와 꼬마신랑“

행운의 캡틴 중에서(4회)


오후 4시30분 경, 땅거미가(해가) 지기 시작한다.

적의 진영에는 전사자들과 부상자들의 모습만 눈에 들어올 뿐 이미 나머지 병력은 퇴각(退却) 해버린 것처럼 보였다. 우리에게 신(神)의 가호(加護)가 미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탄약도 아낄 겸 사격중지 명령(命令)을 내렸다.

풀벌레와 산새들도 순식간에 퍼부어진 총소리에 놀랐는지 바람 소리만 간간이 연하게 들려올 뿐 사격이 중지된 밀림 속에는 적막(寂寞)의 시간만이 흘러가고 있었다.

 

사격을 중지한 채 총기와 탄약을 점검하며 정신을 가다듬고 있던 병사들은 서로서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면서 안도(安堵)의 한숨으로 위로(慰勞)와 위로(慰勞)를 대신하고 있었다.

곧이어 최 중사, 이 하사, 김 하사할 것 없이 모든 분대장들이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어 대면서 오른손에 들려 있는 소총을 살짝 들어 보이는 것으로 각자의 분대원들이 무사함을 표시했고,

분대장들의 보고를 받은 장 중위와 최 중위가 곧바로 나를 향하여 승리의 눈빛을 반짝이면서 고개를 흔들어 사격중지 명령에 대한 동의(同意)와 함께 모두가 다 무사(無事)함을 보고해왔다.

 

그들에게서 긴장되었거나, 초조하거나, 피로하다는 모습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오직 용감(勇敢)하고 늠름하고 그리고 지혜(智慧)롭게 잘 싸우고 있다는 자신만만한 위용(威容) 만이 번뜩거리고 있었다.

누구의 지시라고도 할 것 없이 병사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적으로부터 있을지도 모르는 역습(逆襲)에 대비하여 만반의 경계초소와 방어 진지를 구축하느라 분주하게 몸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곧이어 우군의 지원(支援) 포(砲)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쾅쾅 쾅! 쾅 콰쾅!

저쪽 지대에서는 커다란 섬광(閃光)이 번뜩였다.

나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곧이어 3소대 1 분대장을 선두로 하여 적의 진지를 수색하도록 했다. 화기소대 일부도 뒤따르게 했다.


조심조심 적진지로 향했든 수색대원들은 한참이나 되어서야 적의 에이케이 자동소총을 비롯한 노획품(勞獲品)들을 한 짐씩 짊어지고 돌아왔다.

그것들은 대단한 전과(戰果)였다.

그 많은 대포(大砲)와 포탄(砲彈)들 그것은 분명히 적들이 가지고 있던 전쟁용 살생 무기로써 우리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만일 저들이 그것을 제대로 사용만 했다면 나와 나의 병사들은 꼼짝없이 이곳 깊은 산속에서 그 누구도 돌아보는 이 없이 마냥 썩어가고 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섬뜩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적진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지금 막 물속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누구라고도 할 것 없이 소매 깃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수색에서 돌아온 병사들을 위로한 다음 정신없이 통신병의 등 뒤에 있는 무전기를 들고 대대 본부를 호출했다.

아마도 습관적으로 송수화기를 손에 잡았는지도 모른다.

대대장, 이 중령의 음성이 무전기의 수화기 속에서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오! 오, 살아있었구나,

 

오! 오, 5중대장 살아있었구나!”

 

그의 떨리는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만, 나는 잠시 두 눈을 가만히 감았다.

사(死)의 지경에서 생(生)의 지경으로 돌아오는 순간들이 지나간 것이다.

그것은 끔찍한 불운 속에서 피어난 기적 같은 행운(幸運)이었다.

 

 ‘오! 오 자비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의 지극하신 자비로 죽음의 순간을 넘어 우리는 이렇게 살아 숨을 쉬고 있나이다. 이토록 특별한 행운을 내려주신 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기쁨을 드립니다.’

내 기도는 그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그 후, 보름쯤 지나간 4월 18일, 나는 부름을 받고 백마 사단 사령부로 향했다.

연대장 양 대령과 대대장, 이 중령도 함께해주었다.

웅장한 연병장 안에서 요란한 군악대의 나팔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것은 생과 사의 지경에서 그때에 들었던 우레와 같은 총소리 대신 살아있는 사람들이 부르는 환희(歡喜)라는 사실만이 내 가슴속을 환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이내 주 월 한국군 총사령관 채 장군이 내 앞에 다가와 섰다.

그는 국가와 민족을 대신하여 기다란 금색 천 끝에 매달린 빨, 청, 노랑 (赤, 靑, 黃,)색의 찬란한 무공훈장(武功勳章)을 나의 목에 걸어주고 어깨를 서너 번 두드렸다. 그리곤 악수를 청하며 유쾌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수고했네, 박 대위. 자네의 행운은 온 천하(天下)가 다 알아주어야 할 거야, 귀국할 때까지 몸조심하게 그리고 박 대위의 행운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하네.”

 

내 두 눈가에 무엇인가 뜨겁게 고여 드는 것을 느꼈다.

파란 제복(制服)의 소매 깃으로 눈물 인가 땀방울 인가를 닦아냈다.

마치 꿈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잠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주변(周邊)을 살펴보았다.

보도요원(報道要員) 들이 분주하게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었다.

나는 자신도 모를 미소를 지으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문득 내 사랑하는 대원들과 정글 그 깊은 곳에 함께 목숨이 내던져졌던 그 순간이 떠올라 왔다.

그들에게 무한한 고마움과 애정(愛情)이 솟아오름을 가슴 뜨겁게 느꼈다.

그리고 지금의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의 행운(幸運)이여, 그것은 진정(眞情) 위대(偉大) 했노라!”

 

우리는 귀대(歸隊) 길에 항구도시 나트랑의 어느 번화가로 들어섰다.

그곳에서는 형형 색깔의 각종 네온사인이 눈부시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정글의 지독한 무더위, 소나기와 진흙탕 속에서 뒹굴다 나온 나로서는 정말 또 다른 세계로 온 느낌이었다.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하면서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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