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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1 이후)


도깨비 친구
2016-08-07 15:11:49
ybs7

조회:562
추천:20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야기라고 찰떡같이 믿고 있던 늦은 밤.

꿈나라 여행 중이던 경민이가 우연히 도깨비를 만나게 되었어요.

참 이상한 일이었지요.

믿지 않으려 해도 머리에 뿔 달린 것만 빼고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지 뭐예요.

꿈속에서도 경민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예전에 할머니께서 말씀해 주신 이야기를 떠올려 봤어요.

'귀신이나 유령과 다른 도깨비는 사람들이 늘 사용하다 버린 낡은 가구가 변한 것이지. 예를 들면, 몽당 빗자루, 부서진 옷걸이, 헌 신발 등등. 우리가 잘 쓰다가 필요 없다고 아무 곳에나 내버린 물건들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도깨비 특성은 해가 동동 뜬 낮에는 꼼짝 안하고 있다가 밤만 되면 오래된 돌담이나 으슥한 산길에 나타나 밤새도록 말동무하자며 조르기도 하고, 힘겨루기 시합을 하자고 거머리같이 붙어서 짓궂은 행동을 일삼다 새벽에 닭이 울기 시작하면 잽싸게 도망간단다. 때로는 여럿이 모여 불덩어리로 변하여 어두컴컴한 길을 요리조리 맴돌기도 하면서 겁을 주기도 하고……. 또한, 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마음씨 고약한 사람은 비상한 힘으로 짓누르며 심술궂은 장난으로 홀려 혼을 쏙 빼어 버리지만, 착한 사람에겐 뜻하지 않은 복을 담뿍 주고 사라지기도 하지. 그래서 덕을 쌓지 못한 사람들은 귀신 곡할 노릇이라며 도깨비를 무서워했고, 덕을 쌓은 사람들은 항상 고마움을 잊지 못하며 살았단다.'

라고 자주 들려주던 이야기를…….

그러자 불안한 마음이 문득 드는 거예요.

종종 엄마 말씀을 듣지 않은 자기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먼저 혼을 쏙 빼어가 버리면 어떡할까 걱정이 앞섰거든요.

경민이는 도깨비에게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쉰 후 다부지고 씩씩한 목소리로 물었어요.

"야! 뭣 때문에 날 찾아왔니?"

도깨비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싱긋 웃곤 멋쩍은 듯이 대답했어요.

"으~응. 친~ 구~~ 하려고……."

"무~어라?"

그 한마디에 조바심 생겼던 경민의 마음이 봄 눈 녹듯 사르르~~~.

어느 새 무서움은 사라지고 호기심이 싹트기 시작한 경민이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자기소개를 했어요.

"난 박경민이야. 남자애처럼 활달한 성격에 빼빼 말랐다고 친구들이 '삐삐'라는 별명을 지어줬단다. 네 이름은 뭐니?"

갑자기 묻자 도깨비가 오히려 주눅이 든 듯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해 주었어요.

"도깨비는 따로 이름이 없어. 자기가 변한 물건을 별명으로 부르며 지내지."

"호호. 우습다. 그러면 넌 뭐가 변한 거니?"

"네가 싫증나서 억새밭에 던져 버린 빨간 구두 한 쪽이야."

"엥?"

할 말을 잊은 경민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깨비가 까르르 웃으며 말하는 거예요.

"오래 전 가족과 억새 밭 언덕 위에 놀러가서 아무도 모르게 벗어 던지고 시침을 뚝 뗀 덕분에 새 구두를 사 신을 수 있었잖아."

뜻밖의 말에 경민의 얼굴은 저절로 홍당무처럼 변해 버렸어요.

이럴 때에 ‘귀신 곡할 노릇이다’라는 말이 문득 떠오르지 뭐예요.

도깨비는 짓궂은 개구쟁이처럼 입이 찢어질 듯 웃으며 말했어요.

"걱정하지 마. 내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니까. 하지만, 다시는 그런 행동하면 따끔하게 혼내 준다. 알았지?"

"으~o."

엉겁결에 말꼬리를 내린 경민이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 모습을 눈웃음 지으며 바라 본 도깨비가 악수를 청하며 되물었지요.

"이젠 친구 해 줄 수 있겠니?"

"그~럼~~~."

그제야 안심한 경민이는 손을 맞잡으며 방긋 웃곤 도깨비의 별명을 불러 봤어요.

"빨간 구두야!"

"응?"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 종종 꿈에 놀러와 돌아다니면서 재밌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렴."

"걱정 붙들어 매. 올 때마다 경민이가 겪지 않았던 괴상야릇한 이야기를 몽땅 전해 줄게."

"좋아!"

그 후로 경민이는 밤이면 밤마다 어김없이 꿈속에 찾아오는 빨간 구두 도깨비와 맞장구치며 농담을 주고받았어요.

헛된 욕심을 부려 가난한 자를 괴롭히는 부자와 천성이 게을러 일은 하지도 않고 불평불만을 일삼는 어리석은 자, 화투와 트럼프 등을 사용해 내기에 미쳐 가족은 나 몰라라 하는 파렴치한에게 불쑥 나타나 따끔한 일침을 놓은 이야기 등등.

도깨비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꽃을 피운 게 엊그제 같은데 몇 달이 훌쩍 지난 어느 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경민 방에 찾아오신 할머니가 불쑥 물으셨어요.

"경민아! 요즘 네 얼굴이 파리해져 간다는 걸 알고 있니? 살도 쭉 빠지고, 시간만 나면 졸기 일쑤니 도대체 어쩐 일이냐?"

세상일을 무엇이든 잘 알고 계신 할머니의 불호령에 깜짝 놀란 경민이가 엉거주춤 일어서서 더듬거리듯 자초지종을 말했어요.

말을 마치자마자 한동안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측은하게 바라보던 할머니가 인자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지요.

"경민아! 예로부터 사람은 사람끼리, 도깨비는 도깨비끼리 모여 사는 거란다. 잔정이 들었을지라도 평생을 함께 살 수는 없는 법. 지금 당장 억새밭에 가서 신다가 버린 빨간 구두를 찾아오렴. 그 동안 할미는 몽당 빗자루와 깨진 바가지, 부서진 의자를 모두 한데 모아 둘 테니까."

밑도 끝도 없이 빨간 구두를 찾아오라는 말에 이상한 생각이 들자 경민이가 할머니께 조심스레 여쭈었지요.

"할머니! 무슨 뜻인지? 오래 전에 버린 걸 왜 찾아오라 하시나요?"

"다 너를 위해서야. 서운하겠지만 밤마다 나타나던 도깨비 친구를 멀리 보내려는 생각이란다. 사용하다가 못 쓰게 된 버린 물건을 모아 불태우면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거든."

경민을 위해 말씀하시는 할머니께는 죄송한 마음이 앞섰지만 어쩔 수 없이 손을 붙잡고 간절히 부탁을 했어요.

"할머니! 하룻밤만 참아 주세요. 오늘 밤에 도깨비와 만나 작별 인사라도 나누고 싶어요. 제 마음 이해하시죠?"

애원하는 경민의 말에 감동한 할머니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알았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계셨지요.

경민의 수척해진 모습을 지켜 본 할머니의 얼굴엔 못내 그리워하는 철부지마음을 빨리 다잡고 싶어 하는 강한 의지가 돋보였어요.

할머니 참된 마음을 헤아린 경민이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다 고민에 빠졌지요.

'만나면 뭐라고 변명을 해야 될까? 서운한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오해 없이 웃으며 헤어질 수 있을까?'

뒤엉킨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니 경민의 머릿속이 자꾸 복잡해졌어요.

'에라! 모르겠다. 할머니 핑계를 댈 수밖에…….'

경민이는 억지로 저녁밥을 몽땅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요.

하지만, 잠은 삼천리 밖으로 도망가 버린 듯 머릿속이 더 맑아지는 거예요.

다른 날과 달리 뱃속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더부룩하고,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소화시키려 학교 운동장에 나갔어요.

초승달이 살짝 웃고 있는 운동장엔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트랙 위를 걷는 어르신들이 군데군데 계셨지요.

경민이도 트랙 쪽으로 다가가 돌고 있는데 도깨비 친구가 소리도 없이 나타나 생긋 웃더니 미리 눈치를 채고 말을 꺼냈어요.

"이젠 헤어져야 될 시간이 왔어. 할머니 말씀 잘 듣고, 그동안 친구해 줘서 고마워."

변명 할 겨를도 없이 말꼬리를 흐리더니 달빛 사이로 연기처럼 사라지는 거예요.

아쉬움을 가득 남긴 채…….

눈빛만 보아도 마음을 꿰뚫는 빨간 구두 도깨비의 깊은 우정을 고이 간직한 채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어요.

할머니를 뵙자마자 방금 운동장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전해 드렸지요.

할머니는 경민에게 기특한 손녀라며 손을 맞잡고 축복 기도를 해 주셨어요.

그 이후부터 경민이는 달콤한 잠을 푹 잘 수 있었고, 차츰차츰 파리하게 여위었던 몸이 정상으로 돌아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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