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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수기 행운의 캡틴 중에서
2009-05-12 11:58:04
bbh39

조회:2154
추천:90

 박봉환 문집 꼬마각시와 꼬마신랑 “행운의 캡틴”중에서 1회

승용차 안의 주행지침(走行指針)이 사만 킬러메타를 알리고 있다. 십만 리 길을 벗 삼아 함께 달린 지 삼 년여, 웬만해진 운전 솜씨만큼 손에 배여 오는 핸들의 익숙한 느낌은 차에 대한 친근감마저 느껴지게 한다.

평소(平素)의 휴일처럼 오늘도 내가 애용(愛用)하는 아반떼와 함께 훤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과속(過速)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옆을 스치며 지나가는 고속도로 주변의 조용하고 맑은 정경처럼 평온(平穩)한 마음 그대로였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달렸을까?


조금의 피로를 느끼며 휴게소에 들려 커피 한 잔 하며 쉬어가야 하겠구나 하는 순간, 갑자기 빵~빵, 찌~익 하는 경적소리와 함께 급브레이크를 밟는 비명이 찢어질 듯 섞여 들려오는 바람에 정신(精神)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이미 나의 바로 눈앞에서는 시커먼 승용차 한 대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며 나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 오는 섬뜩한 기분과 함께 나의 인생은 이것으로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나도 역시 반사적(反射的)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쾅 쾅쾅하는 소리와 함께 두 차는 뒤 엉키고 말았다.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의 두 팔은 운전대를 감싸 안았고 얼굴은 그 속에 푹 파묻혀져 있었다.

무의식(無意識) 상태 바로 그것이었다.

 

얼마나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을까?


나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슬며시 치켜들어 보았다.

어느 틈엔가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들어 있었다.

“천만다행(千萬多幸) 이군” 하는 소리가 그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천만다행이라는 소리에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그리고 용기(勇氣)를 얻을 수가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저쪽 차의 운전자와 시선(視線)이 마주쳤다. 우리는 사전(事前)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조금씩 벌려 안도의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내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서둘러 경찰관이 다가왔다. 경찰관은 무엇인가를 분주히 살피고 나더니


“운이 참 좋은 분들이네요.”라고 한마디를 던졌다.

 

“운(運)!, 운!” ‘

 

그래 운이지 나는 행운(幸運)을 안고 이 세상에 태어났지.’ ‘전에도 또 그전에도 나에게는 행운이 항상 뒤따랐었지.’ 하며 나는 옛날 일들을 기억(記憶) 해 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사선(死線)을 넘나들며 겪어야 했던 월남 전투에서 있었던 몇 차례의 계속된 행운은 꿈속에서라도 잊을 수 없는 커다란 행운이었었다.

 

1969년 3월 27일,

거의 연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이역만리 월남 땅을 찾아 자유의 십자군으로서 용맹을 떨치며 ‘동보작전’을 전개(展開) 중일 때였다.

내가 속해 있었던 부대는 뛰어난 전투수행 능력으로 그 위세(威勢)를 떨치고 있던 백마 사단 예하의 동보 부대였다.

보병 8개 중대와 지원포병(支援砲兵)으로 구성된 우리는 투안박 베트콩위원회(委員會)를 포착(捕捉) 섬멸(殲滅) 하라는 작전명령을 하달 받았다.

 

열대지방 특유의 불을 지펴 놓은 듯한 무더운 날씨 속에 사정없이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과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를 맞으며 정글 속을 헤매 인다는 것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적(敵)”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은 자(者)가 어떻게 알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다행히도 이렇다 할 사건(事件) 없이 5일간의 제1단계 작전을 무사히 수행하고 제2단계 작전 준비를 위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침 내가 이끌던 동보 5중대의 주둔지 주변 모래밭 옆으로는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맑은 강(江)이 있었다.

나는 오랜 작전으로 말미암아 땀에 찌들고 흙으로 범벅되어 있는 중대원들의 몸을 씻겨 줄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병사들을 삼분(三分)하여, 진지경계조와 강변경계조를 배치 한 다음 다른 한 조는 옷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 몸을 씻도록 하였다.

오랜만에 시원한 물속에서 아이들처럼 흐뭇해하며 몸을 씻는 병사(兵士)들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타당, 타당, 따 다 당’ 하는 소리와 함께 물속에서 몸을 씻고 있던 병사들을 향하여 총알들이 무차별적으로 날아들었다.


“하나님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단 말인가?”


나의 얼굴은 노랗다 못해 아예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황천길로 들어가는 아득한 느낌이었다.

 

강변경계조는 상황을 파악하면서 은폐 엄폐물을 이용하여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납작 엎드렸고, 알몸이 된 채 물속에 들어가 있던 목욕 조는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다급하게 총알을 피하면서 물속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러나 전투 경험이 풍부하고 행동이 민첩하며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몇 명의 병사들은 즉각적으로 총소리가 나는 적이 있음직한 방향을 향하여 총을 난사(亂射)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중대장인 나는 적이 총을 쏘는 지점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저-기 정글 쪽 베트콩을 잡아라.” “베트콩이 저기 있다.”라고 외쳐 대면서 소총 일개 소대를 돌격 부대로 선정하여 그들을 추격(追擊) 하려 했지만, 그러나 상황은 이미 끝나 가고 있었다.

 

덜커덕덜커덕 낡은 모터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를 탄 5~6명쯤의 베트콩이 숲 속으로 사라져 갔다.

월남전에서 베트콩과의 전투는 3분 게임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우리는 순식간에 적으로부터 기습 공격을 당하고 말았다.

 

나는 황급하게 인원(人員)을 점검하여 보았다.

3소대 김 병장이 왼쪽 팔에 3도 정도의 화상을 입는 부상을 당했었고 화기소대 이 상병의 오른쪽 귀 모퉁이에서는 피가 사르르 흐르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그들 외엔 아무도 부상을 당하거나 전사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기다랗게 안도의 한숨을 내몰아 쉬며 인간의 운명(運命)은 참으로 무섭게도 끈질긴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나와 나의 병사들을 그 갑작스러운 생사(生死)의 위험에서 아무런 희생 없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행운을 내려주시고 보살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진정 감사합니다.”

 

하면서 나는 오늘 발생한 상황에 대하여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점이 있었구나 하는 반성(反省)을 하였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부대가 이동하여 새 주둔지(駐屯 地)로 들어갈 때에는 철저한 정찰(偵察) 및 탐색(探索) 작전으로 안전지대(安全地帶)를 확보 한 다음 적의 위협으로부터 충분한 방호(防護)를 받을 수 있는 상태로 조심스럽게 진입(進入)을 하여야 했고,

 

또한 주둔지 점령(占領 ) 후에는 즉각적인 경계조의 배치는 물론 의심 지역에 대한 계속적이고도 반복적인 확인 탐색을 하여야 한다는 기본적인 전술 원칙에도 미흡했음을 자책하면서 중대원들의 소중한 목숨을 책임진 지휘관으로서 다시는 이와 같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내일의 연속 작전에 대한 구상과 걱정을 하면서 그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워야만 했다.


박봉환 문집 꼬마각시와 꼬마신랑

“행운의 캡틴”1회 (016-362-8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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