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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환 문집 "꼬마각시와 꼬마신랑" (4)
2009-05-08 12:13:37
bbh39

조회:1623
추천:96

박봉환 문집 “꼬마각시와 꼬마신랑 (4) 

 “불쌍한 양반!” 순이의 눈시울이 붉어져 가더니 이내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불쌍한 양반!”

 순이는 소리 내어 흐느꼈다.

 순이 아범의 죽음을 안타깝게 전해 듣고 있던 봉덕이도 착잡한 심정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먼 산을 바라보고 있던 봉덕이의 머릿속에는 어린 시절 사람 좋기만 했던 순이 아범의 생전 모습이 영화 속의 필름처럼 스치며 지나갔다. 어린 시절, 들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할 때마다 그는 도련님 오늘도 별일 없이 잘 놀았는지요? 우리 순이가 혹시라도 잘못하지는 않았는지요? 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모습과, 학창시절 하교 중 마을 어귀에 들어설 때마다 논에서 김을 매던 그는 언제나 상냥하고 친절한 말씨로 도련님 학교 갔다 오세요 하면서 반갑게 인사하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런 그의 외로운 죽음을 그의 딸 순이로 부터 전해 듣는 봉덕이의 가슴은 메어질 것만 같았다.그의 삶 앞에는 언제나 매서운 비바람이 몰아치고 지나갔다. 그는 언제나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고 있었다.

 봉덕 이와 순이가 헤어져 있던 한 갑자(甲子)가까이의 세월 사이에 4,19혁명, 5,16혁명, 민주화 과정 등을 거치면서 이제는 양반과 상놈이라는 관습은 사라졌다. 어찌 보면 순이 아범은 이 시대의 마지막 천민(賤民)이었던 셈이다.

 “불쌍한 양반! 시대를 잘 못 타고나시어……"

 순이 아범의 죽음 앞에 그를 애도하는 사람은 오직 순이 한 사람뿐이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박 노인의 가슴은 더욱 아려왔다.

  '누가 사람 차이를 백지 한 장이라 했는가?’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이 죽었다며 거리마다 애도의 물결이 넘쳐났었다. 마지막 옹주가 죽었다며, 마지막 상궁이 죽었다며 온 나라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천민(賤民) 관습의 마지막 역사인 순이 아범의 죽음은 그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았다.

 '순이 아범이 본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었으리라.“

 우리 자리를 좀 옮겨볼까?”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박 노인이 제안(提案)하였다.

 “어디로?” 그녀가 눈물을 닦으며 반문했다. “글쎄 정상 전망대로 갈까? 계곡 약수터로 갈까?” “아냐! 저~어 쪽으로.”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왼쪽 길도 오른쪽 길도, 그리고 내려가는 길도 아닌 이상한 방향으로 손가락질을 해댔다.

 박 노인은 의아한 마음에 되묻는다.“

 그쪽은 길이 없잖아?”

 “아냐 그래도 그냥” 그녀가 고집을 피웠다.

 ‘아무렴 어떤가? 가면 길인 것을!’ 박 노인은 그녀를 따라 걸었다.

 ‘군자(君子)는 대로 행(大路 行)이라는 공자(公子)님 말씀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 똑같은 자리에 계속 머물러 묵상(默想)만 하는 석가모니는 또 무슨 길을 걷는 것일까? 공자, 석가, 예수의 길 말고 또 다른 길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제4의 길을 걸을 수만 있다면 그를 세계 4대 성현이라 부를 것인가?  55 년 동안 순이와 나는 어째서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것일까?’ 하고 박 노인이 이것저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박 노인의 손을 잡아당기며 잠깐 쉬어가기를 청했다.

 저쪽 숲 속에서 종달새가 지지배배 지저귄다. 박 자포실 개울에서 봉덕 이와 순이가 꼬마 신랑과 신부의 연을 맺으며 새끼손가락으로 깍지 낄 때 들었던 그 종달새의 지저귐 그대로다. 언제나 이맘때면 들판의 어른들이 손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고 연장을 챙겨서 마을로 돌아오는 때 아니던가.

 저 멀리 등산객들이 서둘러 산에서 내려가고 있었다. 이산에서 뻐꾹 저 산에서 뻐꾹 뻐꾹새가 장단을 맞춘다. 그녀는 봉덕이와 함께 자포실 초가집 멍석에서 누룽지로 허기진 배를 달래던 추억을 더듬으며 박 노인의 팔을 잡아당겨 팔베개한다. 예나 지금이나 더 적극적인 사람은 역시 순이 그녀였다.

 “아. 이러면……”

 봉덕이가 겸연쩍은 듯이 말을 건넸다.

 “아무렴 어때 고희(古稀)의 나를 지금 여자(女子)로 본다고?

 아냐 나는 지금 무(채소) 쪽(?)인 것을.”

 박 노인의 팔을 베고 누운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봉제공장에 취직한 그녀는 쪽 방 생활을 하며 죽기 살기로 일하고 알뜰하게 살았다. 월급을 저축해 어느 정도의 현금을 확보한 그녀는 그것을 잘 굴려 재산을 불려갔다. 당시 그녀가 살고 있었던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주변인 청량리 1동 61번지 일대의 나지막한 뒷동산에서는 많은 사람이 임자 없는 땅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겠다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다.

 이에 뒤질세라 그녀도 삽을 들고 힘이 닿는 데까지 평탄(平坦)작업을 한 후 말목을 박고 새끼줄을 늘여 놓고 여기는 내 땅이니 아무도 손대지 말라는 경계 표시를 했다. 그렇게 땅을 마련한 그녀는 매일 일과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곳으로 달려가 집을 짓고자 억척을 떨었다. 진흙을 뭉쳐서 벽을 쌓고, 평평한 돌을 구해다 온돌을 만들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집 짓는 모습을 살펴가며 수수깡을 얼기설기 엮어 진흙과 함께 지붕을 덮었다. 마분지나 신문지로 3개의 방 모두를 깔끔하게 싸 발랐다. 직접 지은 흙집에 이사한 그녀는 2개의 방은 월세를 주어 꽤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순이는 집을 짓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한 남자와 동거를 하게 됐고 아이까지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 사람의 본처가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한바탕 난리를 겪은 후 그녀는 손도 못 쓰고 본처에게 남편과 자식을 뺏기고 말았다.

 순이는 이웃 보기가 부끄러웠다. 창피한 생각에 집을 팔았다. 나라 땅(國有地)에 지은 집이기에 지상권(地上權)만 주장할 수 있었다. 순이의 집은 주변 시세의 반값 정도에 팔렸다. 순이는 다니던 봉제공장을 그만뒀다. 집 판돈과 퇴직금 그리고 그동안 저축했던 돈을 모두 합쳐 동대문구 신설동에 기와집 한 채를 샀다.그 당시 신설동은 막걸리 거리로 유명했다. 순이는 전국을 돌며 가장 값싼 싸라기 쌀을 사왔다. 약간의 누룩과 찐쌀을 섞고 이름 모를 술 약을 섞어 넣었다. 그리고 약간의 독한 소주를 붙고, 카바이트를 그 속에 집어넣었다. 카바이드 작용에 의해 술이 금방 부글부글 끓었다. 하룻밤 사이에 막걸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날이 밝으면 밤새 만든 술을 소매상에 팔았다.

 

당시 신설동 막걸리 집들은 모두 그런 방법으로 장사했다. 신설동 막걸리 밀거래 (密 去來) 골목에서 술을 사다 먹은 사람들이 배탈이 나거나 머리가 아프다며 호소를 했지만, 신설동 밀주 제조업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카바이트 술을 먹으면 뱃속에 있는 회충(蛔蟲)이 죽어 나온다는 솔깃한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술장사로 그녀는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정부의 일제 단속에 적발되어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서울로 모셔 오던 해에 그녀는 모든 장사를 접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등산객들이 모두 하산(下山)했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서쪽 새가 서쪽, 서쪽 하며 서글프게 울어댔다. 팔베개를 하고 있던 그녀가 박 노인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우리가 헤어져 있던 55년 세월 나는 줄곧 꿈을 꾸었지, 나의 꼬마 신랑 봉덕이, 우리가 연을 맺던 자포실 개울가.” 그녀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박 노인도 그녀를 따라 눈을 지그시 감았다. 눈앞 가득 고향 풍경이 피어올랐다.“미안해 순이. 정말로 미안해.

 ” “……” “……” “

 그런데 말이야 중학교 때 그 서낭당 고갯마루 터에서 왜 나를……

  ' 그녀는 말을 얼버무리며 힐끗 웃었다.

 “…… …… ……”

 한동안 또 한 번의 침묵이 이어졌다.

 “어머, 여태껏 내 말만 했네. 이제 그쪽 차례야.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으응. 나는 말이야! 근데 날이 캄캄해지고 있네. 우리 내려가면서 이야기하지.” 박 노인과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컴컴한 밤길을 가르며 산에서 내려왔다. 어린 시절 꼬마였던 두 사람이 함께 부르던 노래가 입가에 맴돌았다. 왜정 말기 학교에 다니는 선배들이 가르쳐 주던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뇌리에 아련히 떠올랐다.  해방 직후 한 손가락으로 오르간의 건반을 두들기며 애국가를 열심히 가르쳐 주던 선생님이 느닷없이 빨간 완장을 팔에 두르고 마을 어귀에 나타나 장백산 줄기 줄기하며 북한 공산당의 노래를 가르쳐 줄 때에도 봉덕이와 순이는 함께 노래를 배우면서 6.25 동란을 겪어야 했었다.

 초등학교 운동장 국기 게양대에 태극기, 일장기, 그리고 북한 공산당의 깃발이 번갈아 가며 나부낄 때마다 봉덕이와 순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로 그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었다. 어린 시절 그들은 언제나 함께였었다. 이제 꼬마신랑 봉덕이는 꼬마각시 순이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줄줄 풀어놓을 것이다.

 “...... ......”

우리나라 마지막 천민(賤民)인 순이 아범의 명복을 빌어 드린다. 아울러 꼬마 신랑과 꼬마 각시의 여생에 만복(萬福)이 깃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2007년 여름 박봉환 문집

“꼬마각시와 꼬마신랑” 마지막 회 (016-362-8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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