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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환 문집 "꼬마각시와 꼬마신랑" (3)
2009-05-06 18:48:47
bbh39

조회:1613
추천:78

박봉환 문집 “꼬마각시와 꼬마신랑” 중에서(3)

 

다음해 봉덕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순이는 가난한 가정형편에 더해 마을 사람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던 아버지의 반대로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순이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펐다. 어렸을 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부모와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을 애써 외면하면서 명랑하게 살아왔지만, 이제는 ‘상놈(賤民)’ 집에서 태어난 자신이 싫어졌고, 마을 사람들에게 비굴하기만 한 부모의 태도가 부끄러웠다. 순이는 부모와 일상생활에서 사사건건 대립 각 (對立 角)을 세우며 잦은 말싸움을 벌였다. 아마도 중등교육(中等敎育)을 받는 과정에서 배웠던 신사상(新思想)과 자신이 처한 현실과의 괴리가 사춘기(思春期) 과정의 열여섯 살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짐이었을 것이다. 가난했지만 평화로웠던 순이의 집이 분란(紛亂)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순이 아범은 순이의 마음을 달래려고 이웃마을 신자포실(申自浦室) 산지기였던 순자 네의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순자 아범은 열심히 일해 모은 재산 쌀 다섯 섬(10가마)을 읍내부근에 있는 김 씨 일가의 종친회에 주고 그 가문의 족보(族譜)에 입적(入籍)할 수 있었다 하더라. 말하자면 돈을 주고 양반반열(兩班班列)에 오른 것인데, 우리도 열심히 일해 재산을 모으면 비슷한 방법으로 상놈의 탈을 벗을 것이니 조금만 참고 견뎌 보아라."하지만, 이미 순이는 아버지가 불가능한 말을 한탄조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남을 나이였다.

 

몇 년 뒤 순이 아범이 뜻밖의 사고로 몸이 부실해져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산에서 그만 낙상을 하고 만 것이다. 순이 네는 박 씨 일가의 산지기 임무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를 당한 순이네 는 자포실(自浦室)을 떠나게 됐고, 서운한 감정에 다시는 그곳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순이는 그때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봉제 공장에 취직했다. 순이는 봉덕이가 입학했다는 대학을 찾아 가 보았지만, 첫 학기가 지난 후 학비 조달이 어려워지자 휴학계를 내고 군대(軍隊)에 입대한 봉덕이를 만날 수는 없었다.

 

‘봉덕아!’‘

나의 꼬마신랑 봉덕아!’

순이는 봉덕이가 다녔던 대학교 정문 앞에서 그리움에 젖어 그렇게 그의 이름을 불렀었다.

 

“어! 어! 보~옹 더 억이”

“아~아니! 봉더~억 씨?”

눈 깜작할 사이에 지나간 지난 55년을 뒤로하고 순이는 가슴 한구석에 간직해 두었던 그 이름을 지금 이곳 불곡산에서 부르는 것이었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살만은 하고?”

“나야 뭐! 그래 그쪽은 어떻게 지냈어?

정말로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

박 노인과 그녀는 두 손을 정답게 마주 잡고 반갑게 간단한 안부부터 주고받았다. 안부 인사를 마친 순이는 봉덕이와 뜻밖의 만남에 들떠 있던 마음을 어느 정도 진정시키고 나서는 자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와 힘겨웠던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포실을 떠난 순이네는 경상도 일대를 떠돌다가 어느 낯선 시골 마을에 정착했다. 순이 아범은 그 마을의 어느 지주 댁에서 머슴살이로 농사일했고, 순이 어멈도 그 집에 빌붙어 함께 기거하면서 식모살이 겸 농사일을 거들며 근근이 삶을 이어갔다. 밤낮없이 일한 그들 부부의 노동에 대한 대가(代價)는 한 해(一年) 쌀 2가마였다. 그들은 몇 년을 그렇게 고생수레 살았다. 그런데 한 불행은 다른 불행의 등에 올라타고 온다고 했던가? 그들에게 불행은 겹쳐서 찾아왔다. 순이 어멈이 허리를 다쳐 앓다가 장질부사에 걸려 죽은 것이다. 젊었을 때부터의 힘든 노동으로 망가진 몸이 전염병을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로 의지하고 살았던 순이 아범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서울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돼가고 있던 순이는 홀로 남은 아버지를 서울로 모시고 왔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연민으로 바뀐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러나 순이 아범은 낯선 도시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노인정에 다니기에는 이른 나이였지만, 딱히 갈 곳이 없는 그는 동네 노인정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도 못 쓴다며 노인들로부터 놀림을 받곤 했다. 살아온 배경이 달라서인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도 순조롭지 못했다. 항상 꿀 먹은 벙어리 행세를 해야 했던 그는 어느 날 억하심정(抑何心情)으로 노인들에게 그가 산지기 시절에 경험했던 소 잡는 이야기를 했다.

 

소를 잡는다며 도끼로 소의 머리통을 내리쳤는데 그만 소의 급소를 잘 못 맞추었고, 밧줄을 끊고 도망가는 놈을 붙잡아 오느라고 힘 꽤나 썼다고 다소 과장 되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노인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리라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다. 그들은 소백정(白丁)이라며 순이 아범을 더욱 놀리며 괴롭혔다.

“예끼 이 백정 놈”

"예끼 이 상놈" 하며 여기저기에서 소리 소리를 지르는 노인들이 있는가 하면 손가락질을 해대면서 그의 머리를 쿡쿡 찔러 대는 노인도 있었다.

순이 아범은 가슴속의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 순진하기 이를 데 없던 그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백정 놈이라고?

니들이 지게나 져봤어?

니들이 ‘깔’(땔감)이 무엇인지 ‘꼴’(소먹이 풀)이 무엇인지 알기나 해?

부모 잘 만나 빈둥빈둥 놀면서 배가 터지게 처먹고 산 놈들!

예끼, 이 몹쓸 놈들아!

다시 내가 여기에 오나 보아라!”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면서 노인정을 박차고 나온 순이 아범은 그 후 다시는 그 노인정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십자매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서울에는 온돌방에서 새어 나오는 연탄가스 때문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는 사람이 종종 발생하여 사회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탄가스를 사전에 탐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십자매를 사들여 밤에는 방에서, 낮에는 마루에서 길렀다. 십자매는 사람보다 연탄가스에 더 예민하기 때문에 십자매가 죽지 않을 정도면 사람들은 안전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런데 십자매가 종종 죽어나가곤 했다. 연탄가스에 중독(中毒)되어 죽는 것이 아니라 십자매의 먹이인 좁쌀을 빼앗으러 온 비둘기가 십자매의 목을 사정없이 좋아 잔인스럽게 죽이는 것이었다.

누가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이라 했는가?

순이 아범은 강하게 태어난 비둘기가 연약한 십자매의 목을 물어뜯어서 죽이는 것처럼 부모 잘 만나 잘 먹고 잘 사는 자들이 자신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분통을 삭일 수 없었다. 그의 착잡한 가슴은 날이 갈수록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다. 마음을 달래는 길은 오직 술뿐이었다. 그는 담벼락에 기대어 반쯤 비어 있는 막걸리 병을 부둥켜안고 꾸벅꾸벅 졸곤 했다. 갈 곳이 없었다. 공원이나 시장 같은 곳을 나다니고 싶어도 집으로 오는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는 글을 배우지 못한 한을 새삼 되짚어보며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순이는 그런 아버지가 안타까웠다. 그녀는 아버지가 공허함을 달래길 바라며 아버지의 조끼 주머니에 항상 여유 있게 용돈을 넣어 드렸다. 그러나 그는 돈 쓰는 요령에 익숙하지 못했다. 오직 막걸리를 사서 주야장천 길가에 앉아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돈도 쓸 줄 모른다는 순이의 성화(成火)가 심해졌다. 그는 지나가는 엿장수를 따라다니며 술값은 얼마든지 있으니 함께 마시면서 놀자고 꼬여 댔다. 그러나 얼마 후 그마저도 장사를 핑계로 그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 군고구마 장수도,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면서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채소를 파는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는 깔이나 꼴을 베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던 시절의 농촌생활을 떠올려 보았다. 외양간에 던져준 꼴을 우물거리며 씹어 먹는 누렁이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갔다. 잔칫집에서 떡판을 칠 때 목을 축이라며 막걸리 한 사발과 시커먼 갓김치 한쪽을 손에 들려주시던 안방마님의 인정 어린 모습이 그의 뇌리 속을 맴돌고 있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 한다고 했던가?

그는 서울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 서울은 더없이 외로운 곳이었다. 그는 서울의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막연한 외로움에 찌든 채 원인 미상의 병고를 치르다 죽고 말았다. 순이가 그를 서울에 모셔온 지 3년 만의 일이었다.

 

박봉환 문집 “꼬마각시와 꼬마신랑” 중에서(청어출판 02-586-0477)

 

***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나는 산행 중 경기도 분당구 불곡산 중턱의 한 쉼터에서 전화를 받았다. 어느 중년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본 게시판을 자주 드나드는 카페의 회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우연히 분당의 미금  전철역 부근 미금 문고에서 박봉환 문집 “꼬마각시와 꼬마신랑”의 책이 눈에 띄어 한권을 즉시 구매 했단다. 그녀는 본 게시판에 부분적이나마 소개된 소설 꼬마각시와 꼬마신랑의 내용을 보고나서 언젠가는 이 책을 꼭 사서 읽어 보고 싶은 심정이었었던 참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모처럼 재미있는 좋은 글에 푹 빠져 3시간여를 쉬지도 않고 단숨에 모든 내용을 독파했다면서 본 카페의 회원 중에서 그 책을 직접 썼다는 것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되더라는 부연의 설명도 있었다.


나는 감사, 감사, 감사하다는 말을 그녀에게 연이어 되풀이 했다. 물론 그녀는 한 카페의 회원인 나를 칭찬하기 위해서 듣기 좋아 하라고 하는 말이라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그녀에게 무척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따끈따끈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 드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이었다.


내가 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그분에게 깊이 머리 숙여 고맙다는 마음을 전한다.

2008년 5월 5일 작가/박봉환(016-362-8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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