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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교 시인론/최선옥
2011-03-19 21:02:17
poapul

조회:1915
추천:130

발효된 유년의 추억과 고향의 서정

- 이성교 시집, 『싸리꽃 靈歌』를 중심으로



최선옥

(시인)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이 시대, 현실과 동떨어진 문학, 독자를 외면하는 문학으로 인하여 문학은, 시는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기보다는 점점 더 벌리고 있다고 한다. 그 원인을 여러 가지로 꼽지만 그중 하나는 시인 스스로가 단절의 높은 담을 쌓고 소통에 귀를 세우기보다는 자신만의 자리매김과 고정된 영역확보에 주력한 때문이라는 것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의 성향을 전체의 흐름으로 보는 것은 과장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요즈음 일부 시단에서 부는 정제되지 않은 과도한 이미지의 수사학이나 이해불가의 장광설의 시들을 대하면서 새로움과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도색된 시단의 위기를 실감하곤 한다. 기존의 서정성에 기반을 둔 시적 형식을 낡은 것으로, 새로운 흐름을 진보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시각에 대해 문학은 이래야 한다고 고정된 틀에 가두기보다는, 비평적 사고의 잣대를 먼저 들이대기보다는 우리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시의 소통부재를 염려하는 시대에 지금껏 지나온 삶의 의미를 곱씹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 예감을 가치로 여기는 폭넓은 삶의 탐구내지는 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시, 심적 안정과 평화의 길로 인도하는 시집을 만났다. 시집의 머리말에서도 피력한바 대로 시인은 새로운 시, 혁신적인 시에 대한 관심보다는 시인 나름의 색깔을 시에서 보여주려 애쓰고 있으며 그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생활을 바탕으로 전통적 혹은 민족적 정서의 시, 향토적 시에 관심을 가져온 시인이 77세 희수를 맞은 기념으로, 시력 50년을 넘긴 기념으로 출간한 시집『싸리꽃 靈歌』를 조명해보기로 한다.

 

1. 유년의 추억과 고향


 인간 삶의 불합리와 부조리내지는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격앙된 목소리대신 자연과 인간본성의 진실성에 마음을 내려놓고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인간의 가장 순수한 유년의 추억과 그 추억에 묻어오는 향수에 회귀하는 시인. 그런 시인의 시편들을 만나며 고향은 시인에게 어떤 의미이며 어떤 시적 가치를 주는 것일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고향은 시인에게 복잡한 현실의 일상에서 놓여나는 정신적 지주이며 시적 근간이 되는 소재다. 팍팍한 일상에서 맛보기 힘든 삶의 진실과 의미, 그리고 삶의 냄새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유년과 고향을 소재로 한 시들에서는 자연물이 배경이 되기도 하고 주체가 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어우러진다. 하늘, 산, 들, 강, 바다, 풀, 꽃, 새 등이 적절히 섞여

있는 속에서 시인은 이들이 이루는 풍경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자연과 어우러져 지낸 것에 대한 기억과, 거기에서 발생되는 정서에 완전한 합일을 이루기도 하는데 때로 그 합일은 종교적 염원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시인의 정신적 출발이기도 한 자연과 고향을 소재로 한 시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가)

고향 친구들

그 이름을 부를 때

큰 그늘이 일었다


바다가 들어섰다

산이 들어섰다


햇볕도 덩달아 환해

산 아래 감나무 홍시가

눈물처럼 발갛게 익고 있었다


어쩌다 벌인 입

이야기 보따리가

숲 속에서 술술 새어나왔다

옛사랑 꽃이야기도......


한 잔 취해

모두 다 이를 허옇게 내놓고

다 같이 교가를 합창했다

그러는 사이 눈에는

이슬이 스렸다

                                                                          -「고향 친구들」전문



나)

섣달 그믐날

공연히 아이들 가슴 부풀어

이 골목 저 골목 뛰어다녔다


참새들도 덩달아

예 제서 짹짹거렸다


집집마다 굴뚝에선

흰 연기 피어오르고

방앗간에선

아낙네들 웃음이 피어났다


해가 한낮이 기울수록

떨어질 줄 몰랐다


아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눈을 크게 떴다

행여나 울릉도 외삼촌이 오나 하고......


가마솥에선

묵은 때를 벗길 목욕물이 슬슬 끓고


굴뚝 모퉁이에선

아이들의 왁자지글한 소리가

얼마 남지 않은 해를 붙들고 있었다

                                                                         -「섣달 그믐날」전문



다)

아이는 귀밝이술을 먹고

키가 쑥쑥 자라길 원했다


그때부터 신기하게

눈이 노오래지고

겨드랑이에 나래가 돋았다


아이는 자라면서

동해변의 곳곳 풍습을 익히고

또 다른 세상을 날길 원했다


그때부터 

하늘은 더 높아 보였다

천지를 휘두르는

시퍼런 칼이 앞에 섰다

                                                                             -「유년기.1」전문


 '고향 친구들/그 이름을 부를 때/큰 그늘이 일었다'. '큰 그늘'은 시인 마음에 일어나는 동요의 회오리로서 부정보다는 긍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 큰 그늘은 '바다가 들어서'고 '산이 들어서'는 것 같은 느낌으로 자연과 인간의 일체감 및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데 '홍시가/눈물처럼 발갛게 익고 있'는 것으로도 그 영역을 넓혀간다. 큰 그늘이 '바다'에서 '산'으로 '감나무 홍시'로 '숲 속'으로 광역화되어 가는 작용으로 인하여 자연과의 합일을 이루는 시인과 고향 친구들은 '눈에는/이슬이 스'리는 정서적 교감을 갖는 것이다.

 설날을 하루 앞둔 섣달 그믐날의 '부풀어'있는 마음과 '웃음이 피어나'는 정경, 먹거리를 만드느라 분주한 부엌, 그리고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굴뚝'의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왁자지글한 소리'들 넘쳐나는 모습들이 정겹다. 부풀고, 피어오르고, 웃음꽃 피어나고, 슬슬 끓고, 왁자지글한 등의 묘사가 대변하는 즐거움과 설렘의 정서가 한껏 고조된다.

 어른이 된 지금에야 순수한 동심과 유년이 얼마나 그리운 것인지, 유년기가 얼마나 소중한 때인지 깨닫지만 유년기에는 어서 나이 들고 싶고, 어른이 되고 싶고, 어른이 되어 금기의 모든 것에서 해방되기를 얼마나 원했던가. 그래서 섣부른 어른 흉내를 내었던 그때로 지금은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그리움만 점점 쌓여가는 것이다.


 자연과 고향과 시인 주변의 인물들과의 정서합일은 그들과 진정 가족이 되는 것이며 그것을 기꺼이 기쁨으로, 행복으로 인식하는 시인의 삶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예시「고향 친구들」,「섣달 그믐날」,「유년기」등에서처럼 왜 지속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 오는 것일까.

 추억으로 불리어지는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으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다. 시인의 오감에 맞닿은 그것은 시인이 처한 현재의 상황에 따라 아름답게도, 슬프게도, 혹은 고통스럽게도 그려지는데 그 이유는 추억은 과거라는 시간 속에서 현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는 시각은 현재 시인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고정불변의 느낌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추억은 현재의 삶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므로 유년과 유년을 배경으로 한 자연과 고향에 대한 기억장치는 지금의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시인의 시적일상이 자연을 배경으로 한 향수와 어우러짐은 자연이 주는 비폭력성이 삶의 곳곳에 잠복해 있는 폭력성, 다시 말하면 평화로운 일상을 깨트리는 무자비한 힘을 누그러뜨리고 과거의 시간에 대한 기억의 장치가 현실의 발 빠른 삶과 조우해 과거의 의미와 진실을 재구성, 현실에 대한 긍정의 인식으로 변화되는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이다.

  

2. 주변 돌아보기


 시의 객관적 현실반영은 시적대상의 외양과 속성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시인의 시적세계와 대상에 대한 깊고 넓은 주관성에 달려있다. 시인의 내적자아가 외부세계와 다양하게 만나면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가는데 이것이 현실반영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다.

 시인은 시인주변의 삶을 끝도 없이 돌아보고 직시하며 그것을 시에 반영하는데 이는 시인일상에 밀착해 있는 환경과 대상을 위무하면서 동시에 뜨겁고 순결한 순간들을 현재의 삶에 가져와 정직하고 맑게 환기시켜 친구 같은 시적 존재대상으로 만들어냄을 뜻한다. 자신이 발 딛었던 세계, 혹은 지금 현재 딛고 있는 세상의 한복판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동시에 시적경계를 허물어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을 시인은 시집에서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 삶이 보기에 따라서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저마다의 질펀한 사연들로 너저분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래서 행복과 슬픔이 교직되는 것이 삶이지만 시인은 이  복잡하고도 미묘한 삶의 순간과 사건과 감정들을 절묘하게 긍정으로 빚어내고 있다.

가)

어이 하늘이 생기고

땅이 생겼으랴


소록도 그 뉘우침의 섬에

검은 파도가 일었다


어이 한 세상 태어나서

금을 긋고 못 만나는가


막상 소나무로 서서

눈을 껌벅였지만

거리는 너무 멀었다


눈물만이 먼 바다를 이루었다

다시 손을 잡아볼 수 없는 愁嘆場

恨이 하늘에 가득 차 있었다

                                                                         -「小鹿島 悲歌」전문


 

나)

좋은 자리 금자리

남항南港에게 내주고

서럽게 앉은 자리


새벽 북항은

안개가 소롯이 피어

온갖 푸념을 널어놓았다


政治一番地木浦

온갖 외지 사람들 몰려와

골목골목마다 선거얘기를 했다


어젯밤 술타령하던 뱃사람들

얼굴이 벌건 채

새벽 해장국집으로 가 몸을 풀었다


얼큰한 소주에

짱뚱어 맛이 너무 좋아

노래가 저절로 나와

물이 출렁거렸다

                                                                   -「새벽 北港-목포에서」전문


 

다)

하늬바람 속에

새치름히

눈을 뜨는 마을


날씨 좋은 날은

고운 치마가 질질 끌렸다


바다의 큰 가슴을 안고

배를 내밀었다


임과 주고받은 밀어가

들판 위에 소롯이 피었다


산에 들어가고파

깊은 꿈을 꾸었다


東幕은 일 년 열두 달

새파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동막골을 지나며」전문


 한센병을 앓는 이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 그곳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슬픔이 고여 있다. '뉘우침의 섬'이라고 명명하는 이유는 미안함과 슬픔이 섞인 심리를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이는 섬에 사는 이들의 스스로의 뉘우침이라기보다는 소록도를 바라보는 시인자신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센병 환자들의 시름과 슬픔을 감정이입한 '검은 파도'도 결국은 시인자신의 감정이입인 것이다. 일정한 경계를 두고 만나지 못하는 육지와 섬의 사람들은 지리상의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 정서적 거리가 '너무 멀었'던 것일까. 그래서 시인은 「小鹿島 悲歌를 노래하는 것은 아닐까.

 사는 게 별것인가. '골목골목마다 선거 얘기'로 침을 튀기고 '뱃사람들/얼굴이 벌건 채/새벽 해장국집으로 가 몸을 푸'는 그것, '얼큰한 소주에' 별 값도 나가지 않는 '짱뚱어'로 안주를 하고 그래도 좋아서 '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그것이 삶은 아닐까. 사소한 일상이 오롯이 묻어나는 새벽 北港을 바라보며 느끼는 시인의 마음은 넉넉하다.

 시인은 고향을 말할 때면 신명이 난다.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마을인 동막골을 지나며 정감 넘치는 수식어를 동원, 그곳을 미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시인의 고향에 대한 애틋한 정서와 함께 애향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동막골'은 '하늬바람 속에/새치름히/눈을 뜨는 마을'이며 '날씨 좋은 날은/고운 치마가 질질 끌'린다고 한다. '새치름히'라는 형용부사에는 세상에 대한 설렘과 호기심을 내포한다. 그리고 고운 치마가 질질 끌린다함은 봄바람에 부푼 여심, 혹은 여인의 치맛자락일 수도 있고 일렁이는 아지랑이일 수도 있다.

 '임과 주고받는 밀어'로 묘사된 새싹이 '들판 위에 소롯이 피'는 동막은 '일 년 열두 달/새파란 얼굴을 하고 있는'희망과 생기가 넘치는 곳이다.

 

 시인이 세상을 두루 돌며 쌓은 기억장치가 어느 순간 불쑥 제 기동력을 발휘하지만 결국 시인이 세상에 대해 갖는 인식은 원거리에서 근거리로 이동하고 있음을 예시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작은 예에 불과하지만 '소록도'에서, '북항'으로 다시 시인의 고향인 '동막골'로 시인의 눈과 마음이 휘 돌아오는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시인의 멀리에서 차용해오는 시적소재들이 결국 모성의 원천 같은 고향으로 집결되는, 다시 말해 시인의 관심사가 고향으로 복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변의 작고 사소한 사물과 대상들을 살피는 시인의 성정으로 인하여 시 속에는 하늘, 바다, 산, 나무 등 자연물이 오롯이 생명체로 살아 있으며, 또한 주변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삶의 친숙함과 정(情)적인 요소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러한 시적 특징에는 식물성 혹은 서정성의 세계관내지는 미적의식이 바탕이 되어 있음이다. 식물 혹은 광물로 대변되는 자연물은 시인의 오랜 친구이며 시적 전유물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적극적으로 행동의 제약을 가하지 않고 다만 본성 그대로의 위치에서 올곧은 모양을 갖춘 정직성과 순수성을 지니고 있기에 시인은 자연의 그 본성을 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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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poapul    
2011-03-19    
21:04:27    
소재로 즐겨 다루는지도 모른다.

전통적 정서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시인의 예시를 적용해 보는 것은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의 시, 주변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과 정서, 혹은 고향의 푸근한 모성의 정서까지 담은 시들이라 하여 무조건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그 정서에 갇혀 있음이 아님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자연물을 소재로 한 시가 갖는 한계점을 시인은 분명한 시관으로 극복하고 있음이다.

우리의 땅에서 나고 자라는 작고 하찮은 것의 이름을 거론하기도 하고 우리 것에 대한 순수한 애착심과 더불어 국토애까지 아우르는 시인의 시적 세계관은 자연성은 물론 서정의 범위를 넘어선 확고한 자기신념을 보여준다. 자연물을 시적 대상으로 할 경우 갖는 강하고 아름다운 생명성의 장점 외에 새롭게 형상화 할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까지도 시인은 모두 아우르고 있음이다.




3. 믿음과 생의 미덕




시인의 시가 확연히 종교색을 띠고 있지는 않지만 그 바탕에는 기독교를 근간으로 한 시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에게 있어 깨달음은 시적 영감의 성취이자 시적 활동의 기본 정신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감동을 만나고 그 감동을 고스란히 시적 믿음과 시적 정신으로 전환하는 시인의 시 전편을 관류하는 흐름은 시 쓰기가 시인에게 믿음이며 깨달음이며 동시에 성스러운 노역임을 짐작케 한다.

세상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 그것을 바라보는 눈은 각자 다르지만 시인이 도달하고 받아들이고 깨달아가는 인식은 아직 가보지 못했거나 경험하거나 깨닫지 못한 세계에 대한 시 읽기의 즐거움을 전해준다. 통상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사소한 것에서 시인은 생의 진리내지는 깨달음을 얻는 것은 그동안 쌓은 삶의 경험과 철학이 기본에 탄탄히 놓여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사소한 것을 행복으로 깨닫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이 필요함을 실감하게 하는데 이는 작은 사물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주변 환경을 성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만나고 접하는 사람들에게 애정과 평화를 느끼고 그것을 심어주는 시인의 인식 때문이다. 예시들을 만나보자.




가)

눈썹을 아래로 깔고

노오란 길을 걷는다




온 천지가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 있다




어느 외로운 섬

수염 기른 선지자의 웃음도 보인다




그저 눈 감고

외로이 걸어간 사람의

노오란 길을 걷는다

-「은행나무 길」전문





나)

핏빛 서린 산자락

늘 이상한 얼굴이 비쳤다

다람쥐도 오지 않는 흉한 바위 가에

눈물의 꽃이 피어 있다




안타까이 죽어가던 그 눈

사방에 걸려 있다

한 마리 까마귀도 울지 않았다

희미한 하늘 멀리

십자가 걸려 있다

한 마리 까마귀도 울지 않았다




희미한 하늘 멀리

십자가 걸려 있다

하늘의 큰 손이 얼비쳤다




밤새 눈물로 기도하시던 어머니 얼굴이

오늘 하얀 싸리꽃으로 피어 있다

-「싸리꽃 靈歌」전문




다)

네 살과 내 살이

닿아 붙을 때

그 말은 하얀 꽃이 되었다




서로 마음을 하나로 얹을 때

온기가 퍼지고

새로운 마을이 들어섰다




비 오는 날

우울한 마음으로

벽을 향해 드러누웠을 때

저절로 붉은 말이 튀어나왔다




하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다만 흙냄새가 날 뿐이었다

-「욕소리 美學.1」전문




은행잎 깔린 '노오란 길'을 걸으면 '온 천지가/말씀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이 말씀을 딛고 걷는 길에서 '선지자의 웃음'도 떠올리는 시인은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믿음내지는 진리를 터득하는데 그 길은 '외로이 걸어간 사람의/길' 바로 선지자가 다녀간 길로 의미를 고차원화 시킨다.

'싸리꽃'이 피었다. 그 싸리꽃은 '눈물의 꽃'이며 그 꽃이 핀 '핏빛 서린 산자락'에' 늘 이상한 얼굴이 비'치는데 그 얼굴은 '하늘의 큰 손'이 얼비치며 나타나는 계시자, 혹은 절대자의 모습일 수도 있으며 '안타까이 죽어가던' 이의 얼굴일 수도 있다. 그이는 임무를 띠고 세상에 와 사랑과 희생의 역할을 다하고 간 이의 모습일 수도 있는데 이는 '희미한 하늘 멀리/십자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시인의 믿음내지는 종교와 연관이 있지 않나싶다.

'밤새 눈물로 기도하시던 어머니 얼굴'이 변용된 싸리꽃은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붉은 자주색이 아니라 '하얀' 색의 모습으로 피어 있는 것은 '靈歌'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싸리꽃은 기도와 믿음과 어머니가 얽혀있는 상징적 대상이라 할 수 있다.

비어, 저속어로서의 욕이 아니라 삶의 진한 여운이 묻어나는 욕은 정감이 있다. 욕쟁이 할머니가 국밥 한 그릇에 덤으로 얹어주는 욕은 그래서 덕담이 되고 미덕이 되고 '미학'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얀 꽃'이 되고 '붉은 말'이 되는, '흙냄새'나는 욕소리를 정겨움으로, 삶의 미학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연륜은 그래서 싱싱한 젊음이 따라갈 수 없는 높은 경지이며 깨달음이다.



우리의 삶은 실재적인 것, 효용가치가 있는 것에만 너무도 오래 선한 기준과 후한 점수를 주어왔다. 그러나「은행나무 길」, 시집 제목이기도 한「싸리꽃 영가」,「욕소리 미학」과 같은 예시처럼 시인의 시들은 소박하고 질곡 많은 삶을 세월을 역류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시인의 탄탄한 시력과 시의 미적균형감각은 시적대상을 따뜻하게, 섬세하게 들여다보면서 시적 아름다움과 존재의 근원을 파헤친다. 존재의 영원성과 지향성을 굳게 믿는 시인의 시력은 지나온 생을 되돌아보며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시인과 시적대상이 하나가 되면서 분출되는 시적 아름다움은 시인의 삶에서의 깨달음을 농축한 아름다움이며 그 아름다움을 통해서 독자는 자신의 속됨과 성스러움의 속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또 다른 깨달음을 획득하는 것이다.



시집『싸리꽃 靈歌』는 그야말로 시인의 시적 정점을 보여준다. 누구나 공감의 지대에 근접할 수 있는 서정의 시로 시작, 어렵지 않은 시어와 시법, 그리고 친근한 소재들로 독자들 구미의 구심점에 시를 올려놓는다.

시력 오십년을 보태는 동안 부단한 시 정신으로 나름의 독자적 시세계를 이룬 시인은 각박한 현대생활에서 자칫 소홀하거나 잊고 사는 민족정서의 시, 향토의 시, 자연을 소재로 한 시 등에 줄곧 관심을 가져왔다. 현대인들은 자연의 소중함, 주변 사물과 주변인 혹은 정서적 가치를 소홀히 하거나 그것들과 동떨어진 삶에서 행복을 추구하려 하지만 그 삶은 불화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데, 시인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에게 짐 지우지 않고 화해하고 융합하고 조화를 이루며 사는 이치, 화음의 이치, 교향악을 이루어 가는 이치를 일깨운다. 이는 소외된 것들, 사소한 것들에게서조차도 정신적 지주가 되는 것들을 찾아내는 시인의 높은 시적안목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독자는 시인의 깊은 시력이 담고 있는 숭고하고 성스러운 미덕에 존경을 품게 되는 것이다.

현시대의 빠른 시간에 소멸되어가는 따뜻함과 올곧음, 그리고 삶의 정신을 시편마다 일깨워주는 시들은 수십 년간 쌓은 시인의 성실하고 진지한 시적과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문학의 위기를 논하는 불확실한 21세기에 서서 시대를 앞장서서 이끌어가는 시적정신, 진정 문학의 새로운 길을 인도하는 시인의 구도자적 사명이 필요한 때, 오십년간 오롯이 한 길을 고집해 걸어온 이에게 붙는 '시인'이라는 호칭은 그래서 존경의 뜻을 얹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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