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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조(寒苦鳥) / 강준희
2007-12-06 21:46:38
안재동

조회:1926
추천:128

[소설]   * 한고조(寒苦鳥)  * / 강준희 

                                                                                                                

   땅을 칠 일이다!
   가슴을 칠 일이다!

   인도 대설산(大雪山)에 산다는 상상의 새 한고조(寒苦鳥)는 밤이 깊어 날이 추우면 몸을 달달 떨며 "날이 새면 몸을 녹일 따뜻한 집을 지어야지. 추위를 녹일 따뜻한 집을 지어야지."하고 울다가도 막상 날이 밝아 따뜻해지면 간밤의 맹세를 까맣게 잊고 "무상한 이내 몸에 집은 지어 무엇 하리. 집은 지어 무엇 하리."하며 집을 짓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한고조는 정신이 참 오달지게 흐리마리한 친구다. 아슴아슴 해망쩍게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기준은 책(작품집)을 낼 때마다 적잖이 후회한다. 아니 낸 책을 여기저기(또는 이 사람 저 사람, 이곳 저곳)보낼 때마다 적잖이 후회한다.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작품집을 여기저기 보내고 나서 적잖이 후회한다.
    기준은 이번에도 또 후회를 했다. 얼마 전에 출간한 소설집 『비익조(比翼鳥)』를 여기저기 보내고 나서 였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토록 돈단무심일까. 치지도외하듯 오불관언하듯 돈단무심일까.
   책을 수백 군데 보냈는데도 고맙게 잘 받았다고 전화나 편지로 인사해온 사람은 몇 사람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짜기라도 한 듯 감감소식이다. 기준은 이거 큰일났다 싶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글 쓰는 사람은 감성이 풍부해 가슴 하나는 더 있어야 함에도 이들이 돈단무심인 채 일언반구도 없으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글을 쓰지 않는 소인(素人)이라 할지라도 책을 받으면 고맙다고 인사하는 게 예의요 상정인데 어떻게 같이 글을 쓰는 사람이 같이 글을 쓰는 사람한테 작품집을 보냈는데도 쓰다 달다 말 한마디 없는가. 참으로 안타까워 곡지통(哭之通)할 일이다. 글 쓰는 사람은 글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드는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므로 책을 받으면 고맙다는 인사 편지(엽서나 이메일이 아닌 육필의 봉함 편지)를 보내야 당연하다. 한데도 어찌된 영문인지 대개의 경우 책을 보내면 그냥 그것으로 그만이다.

   이는 생각컨대 바쁘고 귀찮아서(또는 성가셔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문제는 성의 없음과 예의 없음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와 반대로 책을 보내면 육필로 또박또박 편지를 써서 정성스레 보내는 이도 쌀의 뉘 만큼은 있다. 이는 물론 썩 드문 일이어서 몇백 명에 몇 사람 있을까 말까 하다. 그래서 기준은 이런 편지를 받으면 턱 없이 고마워(신기해) 편지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곤 한다.
   같이 글을 쓰는 사람이나 지인들에게 책을 보내주고 받는 편지가 아닌, 일반 독자로부터 받는 편지에 대해서도 기준은 예의가 깍듯하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편지에 관한 한 기준은 대단히 철저해 누가 편지를 보내오든 그 자리서 봉투에 받은 날짜를 적어 놓고 가위로 봉함된 부분을 오려 편지를 꺼내 읽는다. 어떤 경우라도 편지를 찢거나 뜯어서 읽지 않는다. 편지를 찢거나 뜯으면 마치 발신인의 몸을 찢고 뜯어발기는 것 같아 반드시 가위로 봉함 부분을 자른다. 편지는 문자를 통해 발신인의 말과 생각을 담아 보낸 것이므로 발신인 대하듯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게 기준의 지론이었다.

   이런 기준은 심지어 편지 아닌 고지서나 공과금 따위의 세금통지서가 나와도 함부로 뜯거나 찢지 않고 가위로 봉함 부분을 오려 내용물을 꺼낸다. 비록 공과금 고지서나 세금통지서라 할지라도 발신처가 있고 수신인이 있으니 예로써 대해야 도리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준은 누가 편지를 아무렇게나 췌급해 함부로 찢거나 뜯어서 읽으면 사람이 어쩌면 저럴까 싶어 얼굴이 뻔히 쳐다보인다. 발신인의 인격을 짓밟는 것 같기 때문이다.

   기준은 같이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저서를 보내오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수고했다는 격려의 편지를 반드시 써 보낸다. 물론 정성들여 쓴 육필 편지다. 편지를 쓸 때 기준은 꼭 이런 생각을 한다.
   이 글을 쓰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작가는 글을 쓸 때 심장의 피를 뽑아 그 피 한 방울 한 방울로 글을 쓰는 법인데 하고. 그러면 뼈를 깎는고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그래서 책을 받으면 열 일 제쳐두고 편지부터 써 부친다.

   글 쓰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단말마의 산고(産苦)에 비겨 글을 낳는다 하겠는가. 단말마는 임종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숨이 끊어질때의 모진 고통을 뜻하기도 해 고통 중의 고통이 단말마다. 이렇듯 고통의 극한에서 뼈를 깎고 살을 저며서 쓴 글이 세상에 나와 문단의 모모제인(某某諸人)과 가까운 친지들에게 보내면 거개가 그것으로 끝이어서 어디 개가 짖느냐다. 빈 말이라도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가 없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야 글 쓰는 이의 고통을 잘 모르니 그렇다 쳐도 글 쓰는 이야 글 쓰는 이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아 격려 편지나 위로 전화 한통쯤 해 줄만도 한데 묵비권 행사하는 피의자처럼 입 다물기 예사다.

   기준은 이럴 때마다 서글프기 짝이 없어 앞으론 절대 책을 보내지 말아야지 한다. 그러다가도 막상 책이 나오면 또 책을 보낸다. 힘들여 글써서 돈 들여 책 만들고 공들여 봉투에 주소 써서 우체국까지 낑낑대며 무거운 책 보따리를 여러 차례 들어 날라다(승용차가 없으니까)부치고도 고맙다는 편지 한 장 못 받으면서도 말이다.

   이런 기준이 딱했던지 어느날 후배 작가 종훈 군이,
   "선생님, 이제 제발 책은 아무한테나 보내지 마십시오. 귀한 책 보내봤자 읽지도 않습니다."
했다. 그러며 이렇게 덧붙였다.
   "선생님, 앞으론 절대 책 보내지 마세요. 필요한 사람은 사서라도 봅니다. 저는 친한 친구한테도 제 책 한 권 주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선 이제 가만히 앉으셔서 책을 받으셔야 합니다. 선생님, 그래도 책을 보내시려거든 꼭 줄 사람만 엄선해 보내십시오. 저희 같은 신인도 책을 아무한테도 안 보내는데 왜 선생님 같으신 원로께서 책을 보내십니까. 그것도몇 백 권씩 말입니다."

   지금은 덜하지만 기준이 처음 문단에 나오고 십여 년 간은 책이 나올 적마다 삼사백 권씩 사서 산골 색시 묵나물 돌리듯 마구 돌렸다. 신인은 으레 그런 줄 알았고 또 그래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문단보다 사회 지인들이어서 이 사람을 주면 저 사람이 걸리고 저 사람을 주면 이 사람이 걸려 인심 잃기 십상이었다. 내 책 가지고 인심 잃기 십상이니 낭패로구나! 기준은 난감해 책이 나오면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작가가 책을 찍으면 출판사로부터 받는 저자용 기증본이 고작 이십여 권(보통 이십 권, 많이 받으면 삼사십 권)이다. 그러니 이 몇십 권으로 어떻게 그 많은 지인들한테 다 돌릴 수 있나를.

   지난날, 그러니까 이십세기의 마지막 연대인 1990년대까지는 그래도 책을 찍으면 인세라는 게 나와 매 권마다 책값의 십분의 일을 받았다. 그랬으므로 인기 작가,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이 출판사 저 출판사에서 서로 다퉈 선불로 인세를 주고 또 보너스로 웃돈까지 얹어서 글을 받으려고 난리였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라도 지명도가 웬만큼만 있으면 그런대로 책을 찍을 수 있어 초판 삼천 혹은 오천 권은 찍었다. 그랬는데 새로운 천년의 기간이라나 뭐라나 하는 밀레니엄의 새 천년 이십일 세기가 되자 사정이 달라져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작가들은 책을 출판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로 어려워졌다.

   너울처럼 밀려드는 텔레비전과 컴퓨터 게임 및 인터넷의 말초적 영상 매체 때문에 문자 매체의 책은 도대체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잘 나가던 베스트셀러 작가군도 출판사들이 그전처럼 허겁지겁 달려들어 책을 찍으려 들지 않았다. 그러니 비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책이야 어찌 찍으려 하겠는가. 직장 없이 글만 쓰는 전업 작가들은 원고료와 인세가 수입의 전부다. 그런데 책이 안 팔려 출판사가 책을 안 찍으려 드니 인세는 구경할 수가 없고 원고료라는 건 미미하기 짝이 없어 이삼십 년 전 원고료 그대로다.

   그런데도 글을 발표하려는 작가는 많고 발표 지면은 적어 어쩌다 십년일득으로 글 한 편 발표하면 원고료라는 게 며칠 용돈도 못미쳐 손에 묻은 밥풀이요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되고 만다. 이럼에도 문학지는 해마다 우후죽순으로 늘어 2천년대 들어 물경 백이십여 개로 늘어났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렇게 많은 문예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표된 작품이 몇 문예지를 제외하곤 원고료가 한 푼도 지불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고료 지불은커녕 거꾸로 발표자가 되레 게재료(?)를 내는 이상한 현상까지 생겨났다.

   재력은 있고 발표는 못해(아무리 문학지가 많아도)안달이 나는 사람들이야 형편이 어려운 문예지에 기부금조로 상당액을 쾌척하고 글을 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출판사가 책이 안 팔린다며 출판을 기피하고, 책이 안 팔리니 책을 안 찍어야 돈을 번다는 묘한 논리를 내세우는 바람에 간판을 내리는 건 개점휴업의 작가들이다.

   출판사가 책이 안 팔린다고 아우성이니 출판은 감불생심이고 출판이 감불생심이니 집필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굳이 책을 내고 싶으면 세상이 깜짝 놀랄 작품을 들고 나오거나 출판사 마음에 드는 글을 써야 한다. 이 두 경우가 아니면 자비를 들여 책을 찍어야 하는데 자비 출판은 고수입의 봉급생활자나 재력 있는 작가 외엔 거의 불가능해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이 밖에 출판할 수 있는 길은 저자가 인세 한 푼 안 받고 찍는 무인세 출판이라는 게 있긴 하나 이것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어서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없다. 이러니 꿈과 긍지와 자존심을 먹고 사는 작가의 몰골이 뭐가 되겠는가.
   사정이 이러니 기준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기준은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므로 어려움은 마찬가지였다. 이런 중에도 기준은 무인세 출판을 해 주겠다는 출판사가 있어 자존심은 몹시 상하나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자비 출판도 못하고 무인세 출판도 할 수 없는 작가는 입술을 깨물며 붓을 꺾을 수밖에 없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안 그렇겠지만 기준이 살고 있는 중소도시는 방귀만 크게 러어도 단박 소문이 나 웬만한 일은 그대로 노정이 된다. 때문에 누가 가즈럽을 떨거나 건말질이라도 하면 그날로 소문이 파다하고 쓸데 적게 홍이야 황이야 하며 남의 일에 이리위저리위해도 소문이 바로 쫙 퍼진다. 그러므로 언죽번죽 후림대수작을 하거나 얼렁수로 오지랖 넓게 간사위질하다가는 부접할 수가 없다.

   하여 인간관계에 여간 조심하지 않거나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지탄받기 일도 아니다. 그래 기준은 책이 나올 때마다 걱정이 태산이다. 누구는 책을 주고 누구는 책을주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을 제외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모두 이곳에서 나왔으니 동기동창을 비롯해 선후배가 부지기수로 많고 그 밖의 사회 친구도 상당수여서 책은 있는 게 한정이었다.

   이러다보니 버릇이 돼 책이 나오면 으레 받아야 하고 또 당연히 받는 것으로 알았다. 적이나 하면 기준이 어떤 글을 썼나 하고 궁금해서라도 서점에 가 한 권 사 볼 만도 한데 골프를 쳐 하루 수십만 원씩 허비하고 룸살롱에 가 양주 몇백만 원어치 먹기는 쉬워도 한 권에 기만 원하는 책은 사지 않는다. 아마 조상 중에 누가 책을 읽다 죽은 귀신이 덮어 씌우기라도 한 모양이다.

   안 그러고야 어찌 책을 원두장이 쓴외 보듯 할 리 있겠는가. 책값이라야 어디 비싼가. 한 권에 기만 원밖에 안 가고 오 년이나 십 년 전에는 고작 육칠천 원에 불과했어도 책은 사지 않은 채 거저 얻으려고만 들었다. 그리고 혹자는 대놓고 책 한 권 달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집으로 책을 얻으러 오는 사람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어떤 사람은 빚 받으러 오는 사람처럼 보무당당 찾아와 책 몇 권 달라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또 줄남생이처럼 여러 사람을 데리고 와 책한 권씩 달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여러 가지 행태들이 책을 휴지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사람에 대면 탓할 일이 아니고 불쏘시개나 코풀개만도 못하게 여기는 사람에 비하면 나무랄 일도 아니다.

   이십사오 년 전의 어느 가을엔 이런 일도 있었다. 그 해 여름 기준은 「벽 속의 기침소리」라는 소설집이 나왔다. 단편집이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친구 태호네 과수원에 초대를 받아 그의 과원으로 사과를 먹으러 갔다. 태호는 시 변두리 용마산 자락에서 과원을 하고 있었는데 기준과는 중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두 사람은 중학교 입학식날 처음 만나자마자 일면여구(一面如舊)로 의기가 투합했다. 

   두 사람은 취미나 취향도 비슷해 서클 활동을 같이했다. 두 사람은 문예반에서 활동했다. 태호는 그때 문예반장이었다. 태호는 글솜씨가 뛰어나 각종 학생백일장에 나가 장원을 휩쓸었고 당시 한창 인기 있던 학생잡지 『학원』에도 글이 여러 번 뽑혀 문명을 날렸다. 그러자 태호는 많은 학생들의 우상이었고 문학소녀 여학생들에겐 동경의 대상으로 어느 한 날 팬레터가 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태호 넌 이 담에 아주 훌륭한 작가가 될 거야."
   기준은 태호가 부러워 어느 날 태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기준이 너도 글 잘 쓰잖아. 너야말로 이 담에 근사한 소설가가 될 거야. 두고 봐!"
   태호가 기준의 어깨를 툭 치며 씨익 황소 웃음을 웃었다.
  "나야 뭐 그냥."
   기준은 열없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지만 기분은 좋았다. 자신도 군내 학생백일장이나 도내 학생백일장에 나가 장원과 차상을 여러 번 차지했기 때문이다.

   태호와 기준이 군내와 도내 학생백일장에 나가 장원과 차상을 쉽쓸자 담임은 물론 학교는 이런 자랑이 없다며 환호작약했다. 그래서 학교 정문에 입상을 기리는 현수막을 여러 번 해 세웠고 전체 학생 조회 때도 교장이 두 사람을 조회대 앞으로 여러 번 불러내 칭찬하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발행하는 교지엔 언제나 두 사람의 글이 나란히 실렸고 문예반에서 펴내는동인지 『글밭』은 두 사람이 주축이 돼 이끌어 나갔다. 그때마다 담임과 학교 측이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 힘을 실어 주었다.

    "으이구 좋다, 지화자다. 야아, 우리 학교에서 앞으로 한국 문단을 빛낼 소설가 두 사람이 나오겠는걸."
   담임은 태호와 기준을 중국집으로 데리고 가 자장면을 사 먹이며 추임새를 넣었다.
   "두 놈 다 열심히 해 봐. 내가 힘닿는 대로 도와 줄 테니."
   담임은 어미소가 새끼소를 할듯 지독지애(舐犢之愛)한 눈길로 태호와 기준을 바라봤다. 그러며,
   "요놈들, 이 담에 유명한 소설가가 되면 나 괄시 마라."하기도 했다. 이런 담임은 헤어질 때,
   "너희들 대학은 꼭 국문과가 아니면 문창과를 가야 한다. 알겠지?"했다. 그러면 태호와 기준은 동시에,
   "예, 선생님! 그렇게 하겠습니다."하며 굽실 절을 했다. 두 사람은 이미 대학은 국문과가 아니면 문창과로 정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기준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나오자 기준은 인문대 국문과를 지원했는데 태호는 천만 뜻밖에도 농대 원예과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아니 , 세상에 이럴 수가?!
   기준은 태호가 농대 원예과를 지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그의집으로 달려가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냐고 따졌다. 그러나 태호는,

   "문학은 지난 한때의 추억으로 간직할래!"하며 착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말하는 것으로 봐 태호는 이미 결심이 선 듯했다.
   "아니 태호 네가 농대를 가다니, 넌 불세출의 작가가 되고도 남아. 그러니 맘 돌려 문창과로 가!"
   기준은 앙앙불락 태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아니야. 난 이미 결정했어. 작가도 좋겠지만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아 과수지기가 되기로. 그렇지만 기준이 너만은 꼭 작가가 돼야 한다. 넌 꼭 될 거야. 아주 멋진 작가가!"
   태호는 이러며 노을 지는 서녘 하늘로 눈길을 보냈다.

   "기준아, 우리 내기하자. 난 일류 과수지기가 되고 넌 일류 소설가가 되기로!"
   태호는 계속 서녘 하늘을 응시했다.
   "태호야, 난 네가 너무 아까워. 너무 아까워. 그래서, 그래서······."
    기준도 말하며 서녘 하늘로 눈을 보냈다.
   "알아! 기준이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러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
   태호는 여전히 서녘 하늘에 눈을 준 채 휘갑을 쳤다. 서녘 하늘은 까치놀이 한창이었다. 아니 살구빛 노을이 한창이었다. 기준은 몸이 달아 태호의 손을 흔들며 바장이었다.

   마알간 햇살이 빗살처럼 활활 내리는 가을 오솔길을 호젓이 걸어 태호의 과수원을 찾은 것은 해가 설핏 비끼는 저녁나절이었다. 과원으로 가는 길 양쪽엔 보랏빛 코스모스가 바람에 하늘거렸고 빨간 고추잠자리는 한가로이 날아다녔다.

   "여어, 어서 오게. 귀하신 작가 선생께서 이렇게 왕림해 주시니 영광인걸."
   태호는 두 팔을 크게 벌려 환영했다. 그런 태호는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는지 기준을 반겨 맞았다.
    "무슨 소리. 시답잖은 삼문문사(三文文士)를 초대해 주니 내가 영광이지."
   기준은 태호의 손을 잡아 흔들며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부터 둘러봤다. 사과는 착색을 잘 내기 위해서인지 거의가 종이 봉지로 씌워져 있었다.
   "어떤가. 우선 맘에 드는 놈으로 하나 골라 따 먹게. 사과는 나무에 달린 놈을 따 그 자리서 먹어야 제맛이야."

   태호가 말하며 이 사과 저 사과로 눈을 주었다.
   "그래? 그럼 어디 하나 따 먹어 볼까."
   기준은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과를 고르는데 웬 가슴이 이리 두근대는지 모를 일이었다. 마치 사춘기 소년이 처음 보는 소녀 앞에 섰을때처럼 얼굴까지 붉어졌다.
   "그럼 사과 따 먹고 있게. 나 내무대신한테 가서 한기준 소설가 선생이 오셨으니 맛있는 것 좀 많이 장만하라 이르고 올 테니."

   태호는 이러며 총총히 사라졌다. 기준은 어느 놈이 좋을까 하고 이것저것 고르다가 기중 좋아 보이는 놈을 잡고 봉지를 벗겼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과를 싼 봉지의 글이 어딘지 눈에 익었다. 아니 종이 봉지의 문장이 눈에 익었다. 기준은 이상하다 싶어 구겨진 종이 봉지를 손으로 펴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봉지는 신문지로 만든 것도 있고 책을 뜯어 만든 것도 있었는데 기준이 딴 사과는 책을 뜯어 만든 봉지였다. 그런데 책으로 만든 봉지는 책 한 장으론 작아서인지 책 두 장 끝 부분을 풀로 붙여 만든 것이었다. 가슴을 조이며 문장을 읽어 내리던 기준은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종이 봉지의 문장이 기준의 글이었기 때문이다. 기준이 태호에게 준 소설집 『벽 속의 기침소리』였다. 

   아니 이럴 수가?
   기준은 머리를 좌우로 세게 흔들었다. 그러자 가슴이 우르르 내려앉으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리가 후둘대고 정신이 아물거렸다. 머릿속이 뜨끔거리며 몸 안의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았다.
   오, 맙소사! 뼈를 깎고 살을 저며서 쓴 작품집을 뜯어 사과 봉지를 싸다니. 심장의 피를 한 방울 한 방울 짜서 그 피로 쓴 작품집으로 사과 봉지를 싸다니!
   기준은 그만 하늘이 노오래졌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기준은 태호를 멀리했다. 실망스럽고 절망스러워 태호를 만날 수 없었다. 처음엔 따귀라도 올려붙이며 절교선언을 하고 싶었다. 배우지 못한 무지렁이라면 이해할 수 있고, 문학이 뭔지 작품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막설할 수도 있다. 그러나 태호는 대학까지 나온 지식인이요, 한때 작가 지망생으로 장래가 촉망되던 문학청소년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일회용 잡지도 아니요 일일용 신문도 아닌 소설집을 뜯어 사과 봉지를 싼 것이다. 그것도 절친한 친구의 소중한 작품집을 말이다. 
   오, 맙소사!
   기준은문학에 대해 이때처럼 심한 자책과 회의를 느낀 적이 없었다. 아니다. 또한 번 심한자책과 회의를 느껴 열병 앓듯 꽁꽁 앓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것은 작품집을 뜯어 사과 봉지를 쌌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이십여 년 전의 어느 봄날이었다. 『고개 너머 주막집』이란 장편소설이 나온 얼마 후였다. 고향에서 농고를 나와 농사를 짓는 친구 재민이가 부친상을 당해 조문을 갔을 때였다. 재민이 부친은 미수(米壽)로 타계해 수를 누렸고 상제는 아들 오형제 딸 셋의 팔남매 외에도 유복친이 많아 상가는 흡사 잔칫집 같았다.

   재민은 팔남매 중 맏이로 종가의 종손이었다. 종가의 종손은 대개 가난해 못살게 마련인데 재민네는 살기가 택택해 부자 소리를 들었다. 여기다 자손들도 다 건장해 조상 앞에 간 참척이 없어 호상이었다. 그래 그런지 상가는 조문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또 계절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철이어서 조문객들은 문상이 끝나자 모두 차일 친 바깥마당으로 나왔다. 바깥마당은 한터를 방불할 만큼 널찍해 큰일을 치르기엔 더없이 좋았다.

   오랜만에 만난 조문객들은 학교 동창이 아니면 선후배 관계여서 서로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준도 이들과 어울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며 오늘은 아무래도 이들과 함께 상가에서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아 마음을 진득하니 다잡아먹었다. 상주 재민이와는 초등학교 동창일 뿐만 아니라 한때 4H클럽에서같이 일을 한 사이어서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그때는 기준이 아직 작가가 되기 전의 약관이었고, 또 순수한 열정이 넘쳐나던 때라 4H의 신조강령에 쉬 매료됐다.

   생각하면 그때 4H의 신조와 강령은 참으로 멋있어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헤드(head)인 머리 곧 지식으로는 좋은 생각을 하고, 핸드(hand)인 손 즉 근로로는 훌륭한 봉사를 하며, 하트(heart)인 마음 즉 양심으로는 진실한 동정심을 발휘한다. 그래서 헬스(health)인 건강으로는 가점과 지역과 사회와 신에 봉사한다는 4H운동.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아직 미개해 원시적 생활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던 시대에 헤드, 핸드, 하트, 헬스의 앞머리 글자 이니셜을 따서 만든 4H클럽. 이는 비전있는 시대적 요구요 후진 탈피의 진취적 기상이었다.

   그리고 개척의 선구자적 도전이요 획망이었다. 하여 4H운동은 엄청난 효과를 가져와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근대화를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했다. 더러 천방지축의 천둥벌거숭이들이 가리산지리산으로 일을 망쳐 허맹이문서가 된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열정 하나로 애면글면 깜냥대로 쏟은 4H운동은 농촌과 사회에 큰 공헌을 해 뒷날 새마을운동의 단초와 기초가 됐다.

   밤이 되자 문상객들은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상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밤샘 고스톱이었다. 상가에는 어느 상가든 이런 일이 다반사여서 스스럼없이 판을 벌였다. 때문에 이는 상제나 조문객이 으레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준은 상가에서 벌어지는 고스톱판이 도무지 못마땅했다. 고스톱은 상가가 아닌 곳에서, 예컨대 술집이나 음식점 같은 곳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시간을 메우기 위해 잠깐씩 치는 거라면 몰라도 아니 술집이나 음식점이라 할지라도 그 몰골이 볼썽사나워 안 될 일이거늘 하물며 상가에서, 그것도 비통에 젖어 망극해 있는 상제들 앞에서 "쌌다" 피박이다" "싹쓸이다" 하며 별 로아름답지 못한 말을 무슨 축제 벌이듯 상가가 떠나가게 박장대소하니 이런 육니하고 민망한 노릇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육니하고 민망한 노릇이 기준의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래 기준은 고스톱 안 치는 몇몇 사람과 한쪽 구석빼기에 앉아 차일 밖으로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뇨의를 느껴 마당가 멀찍이에 있는 행랑변소로 갔다. 그리고는 그만 너무도 기막히고 끔찍한 광경을 목도하고 변소 바닥에 덜퍼덕 주저앉았다. 책이, 기준의 작품집 『고개 너머 주막집』이 반나마 뜯긴 채 변소 바닥 휴지통 속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아! 아!"
   기준은 반벙어리처럼 소리치며 반나마 찢어발겨진 작품집을 조심조심 집어 들어 가슴에 안았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살이 떨리고 말할 수 없는 참혹함에 눈물이 났다.

   "아! 아! 아!"
   기준은 처찹하게 찢겨진 만신창이의 작품집을 보듬어 안고밖으로 비틀비틀 나왔다.

   "아! 아! 아!"
   기준은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은, 금모래를 뿌려놓은 듯한 별무리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아! 아! 아!"
   기준은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연해 "아 아 아" 하는 단절음을 토하며 어딘가로 걸었다. 산매 들린 듯 허청허청 어딘가로 걸었다. 그러며 이렇게 뇌까렸다.

   "그래. 나 한기준은, 한고조 삼신이 뒤집어 씌운 나 한기준은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책이 나오면 돌리고 또 돌릴 것이다. 친구네 과수원에 사과봉지용으로도 돌리고, 친구네 집 변소에 똥닦개용으로도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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